1.
그 식당은 바다의 낙조가 바라다 보이는 산마루턱에 자리 잡아 경사진 좁은 산길을 한참동안 걸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산길은 양편에 서 있는 가로수 가지들이 서로 손을 맞잡지 못해 애달픈 듯, 이파리들이 끝이 닿을 듯 말 듯 연이어져 잎새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하늘을 보며 숲길을 걷는다는 것이 그렇게 상큼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예사롭지 않으니...
햄버거 식당에 오는데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상식이 이 숲길 나무 사이를 지나면서는 어쩐지 수긍이 갈 것도 같았다.
길이 끝나는 고개를 넘자 나타나는 광경은 드라마틱했다.
시각의 한계를 벗어나 펼쳐져 보이는 아이맥스 화면의 사파이어 하늘과 에메랄드 바다...
햇빛에 반사되는 작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넘실대는 파도의 분말...
시시각각 변하는 석양의 붉은 빛깔에 가리고 있던 구름조각들이 유화처럼 물들여질 때, 그 경치에 탄성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코타키나발루 햄버거”
저녁에 이 식당을 찾는 손님이 많은 것은 바다에 지는 석양, 그 낙조의 광경, 그리고 그 어떤 전설을 맛보기 위해서이리라. 햄버거...
지중해 연안의 파스타 요리나, 프랑스식 해물요리에 와인이 어울릴 듯한 분위기에 햄버거를 먹는다는 허구성이 오히려 사람들을 끌었다.
식당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했다.
시야를 가리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촬영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사진작가와 매니어들이 찾는 이곳인지라, 낙조의 광경을 완벽한 자연에서 온전히 구경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배려였다.
또 하나는 햄버거를 주문할 때 이 식당의 주인에게 얼굴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이란 햄버거를 만드는 요리사였다.
이제 머지않은 중년의 남자. 그는 주문하는 손님의 얼굴을 보고 햄버거를 만들어 준다고 하였다. 식당 안에는 얼굴들의 그림이 가득했다.
이곳에는 이런 전통이 있었고 그것이 바로 매력이었고 손님들이 끊임없이 찾는 이유였다.
임마뉴엘 데이빗. 한국 이름 박공석. 일본 이름 이소자키 세이치.
주인은 세 가지 이름을 쓰고 있었다.
자기를 미국인이라 할지, 한국인이라 할지, 일본인이라 할지, 주인은 경우에 따라 사려 깊게 분별하곤 했다.
2.
그가 태어난 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자란 곳은 미국이었다.
임마뉴엘이 눈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푸른색의 눈과 노란 머리, 백색피부의 미소짓는 엄마였다.
자랄 때, 항상 부모님과 형제들의 얼굴을 마주보면서도 그는 자신이 자신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침마다 온 가족이 식탁에서 함께 먹는 시리얼과 완두콩과 우유처럼 그의 피부는 당연히 흰색이었고 눈동자는 푸른색이고 머리 색깔은 금발이었다.
거울에 나타나는 이상한 얼굴은 거울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었다. 거울을 보면 얼굴모양이 그렇게 바뀌는 것이다. 거울이란 그런 것이니까...
아니, 그런 것이 궁금한 적조차 없었다. 그의 형제들도 그랬다.
부모님은 모든 형제들을 똑같이 사랑해 주었다.
부모님은 그를 키우는 동안 그가 다른 형제와 다르다는 것을 한 번도 일깨워 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를 때 행복했었다.
생각해보면 볼수록,
‘행복’이란, 시작될 때는 모르는 것이었다. 끝날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었다. ‘불행’이라는 단어를 알게 될 때 새삼스럽게 깨우치는 단어였다.
그가 얼마나 행복했었던가를 깨달은 것은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학교는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입구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 새로운 입구였을 뿐이었다.
학교에 찾아온 부모를 보면서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비로소 자신의 얼굴이 형제들...,뿐만 아니라 그 누구와도 다르다는 것을...
그 후부터 머릿속과 가슴속에 생기는 수많은 의문들을 홀로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학교에 들어가자 부모님은 그에게 더 세심한 관심을 베풀어주었고, 선생님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더 불행스러워졌다.
솔직하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자 임마뉴엘은 엄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제 친구가 손으로 양쪽 눈꼬리를 찢는 시늉을 내며 혀를 내밀고 문 밖을 가리키며
‘가! 가! 너의 집으로!’ 라고 외치며 놀렸었다.
“엄마, 나는 집이 어디야?”
엄마는 그 질문을 듣자 와락 임마뉴엘을 껴안았다.
“네 엄마가 있는 이곳이 너의 집이란다...아가..”
“그런데 왜 나보고 너의 집에 가라고 해?”
엄마는 그를 가슴에 안고 양 볼을 부비며 귀에 속삭여주었다.
“엄마가 기도해서 하늘의 천사가 너를 엄마에게 보내주었단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너를...그래서 너는 특별하단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아이란다. 너는 하늘에서 온 아기란다. 엄마는 너 없이는 못살아...
아가야. 사랑한단다. 사랑한단다...”
임마뉴엘은 이렇게 들었다. 말해주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이였다.
타고난 것인지, 그는 참을성이 많았다.
부모님은 언제나 그에게 변함이 없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는 아니었다.
엄마와 임마뉴엘은 서로가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기를 바라며 서로가 서로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엄마가 보기에 임마뉴엘은 아직 세상을 모르는 어린 아이였고, 임마뉴엘이 보기에 엄마는 아들을 모르는 순진한 엄마였다.
기실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그 어떤 느낌을 통하여 더 어른스럽게 성숙하고 있었는데 그 느낌이란 ‘외로움’이었다.
엄마와 임마뉴엘은 서로의 상처를 걱정하였지만, 임마뉴엘의 그 ‘느낌’은 뻣뻣한 검은 머리칼과 작은 눈의 눈동자와 황색피부가 뚜렷해지면서 더욱 진해졌다.
외로움은 문신처럼 키가 자라면서 같이 자랐다.
말수가 적은 성격 탓이라 그는 자신과 속으로 말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임마뉴엘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어디선가로부터 입양당한 아기였고, 동양의 어느 저주받을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이방인이라는 것을...
자기는 2등 국가의 인종이고,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들리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로 키득거리고 있다는 것을...
자신은 근본이 없는 외로운 외톨이라는 것을...
사춘기에 들어섰을 때, 마음에 격동이 일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혼란과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졌다. 백인들이 그를 동양인 2세나 3세정도의 미국시민으로 볼 때, 자신은 백인 부모를 가진 미국시민임을 설명하기가 궁색했다.
‘입양아’
라는 단어를 괄호 속에 넣어두고 자신을 요령있게 설명한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괄호안의 단어를 꺼내자니 자존심, 그리하여 시작될 선입견이 두려웠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동양인을 보면 더욱 꺼려졌다.
그들은, 더듬거리는 말과 불안한 지위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뒷모습은 당당했다.
임마뉴엘은 그들을 보면 어쩐지 한 단계 높은 우월감에 사로잡히다가도 괄호속의 단어를 입 밖에 내면서부터는 당당함이 사라지는 곤혹감에 사로잡혔다.
어려운 처지임에도 나는 어디에서 온 아무개이고, 나의 꿈은 무엇이요 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타인종의 젊은이를 볼 때 임마뉴엘은 그런 당당함이 부러웠다.
고아.
그는 고아로서 미국에 왔다. 왜냐하면 입양되기 위해서는 고아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데이빗과 같은 좋은 아버지를 만났지만, 입양된 고아들이 미국에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더러는 양아버지의 학대 속에, 더러는 스스로가 불행한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어찌할 수도 없이 시민권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튕겨져 나와 타국거리의 노숙자가 되는 자도 흔히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저주를 받고, 죽을 때까지 사회의 냉대가 계속되는 고아들은 많았다.
고아는 늘 부모가 그리웠다. 그리고 미웠다.
자신을 버린 부모가 죽이고 싶도록 밉다가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그리움에 눈물을 쏟으며 외로움을 삭여야 했다.
“엄마.”
이 흔한 단어를 자신은 왜 마음껏 부르지 못하는가.
동떨어진 얼굴이 아닌, 그 얼굴 속에서 생긴, 자신의 얼굴처럼 생긴 여인에게 이 단어를 진심으로 한번만이라도 목메어 부르고 싶었다.
그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기피하게 되면서 가까워지는 것이 있었다. 자신과 같은 입양아들의 코뮤니티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미움으로 뭉쳐지는 친구들과,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술과 약이었다.
3.
어느 가을 날, 이제 수염이 거뭇거뭇 자라는 임마뉴엘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아버지는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 안고 조용하게 말씀하셨다.
“임마뉴엘...
알고 싶겠지...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아들이었는지, 또 왜?...
아버지도 이해한단다. 너의 그 고통과 실존감의 방황을...
언젠가는 너를 낳아준 부모님을 찾고 싶고, 보고 싶어 할 것이라는 것.
당연한 일이지. 그렇지만 나는 망설였단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너에게 말해야 할지...너를 낳아준 부모님도 너를 보고 싶어할지...너도 그럴지...
알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망설였단다...”
아버지의 말은 어둠속의 우물처럼 깊었다.
조숙하고 과묵했던 그. 그러나 휴화산이 폭발하듯 그의 눈물이 용암처럼 폭발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과 입이 동시에 문을 열렸다.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
저는 버림받았던 건가요? 우리 부모님이 저를 버리셨나요?”
말소리는 작았지만, 그 흐느낌은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아버지는 임마뉴엘의 떨리는 이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그것이... 그것이...그렇게도 크게 자리 잡고 있었구나...’
아버지는 임마뉴엘의 손과 어깨를 잡고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가 어디에서 왜 왔는지...
아버지의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 속 못이 되어 박혔다.
4.
아버지는 임마뉴엘에게는 또 한 분의 아버지가 있었다고 하면서 말을 시작했다.
두 번째 아버지는 이소자키라고 하는 일본 사람이었다.
아버지 데이빗과 이소자키는 같은 대학에서 연구하는 교수였다.
두 교수는 예컨대, 인간의 탄생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을 밤새워 벌이곤 하는 실존철학 모임의 멤버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이란 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세상에 내던져지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끝없는 논쟁을 했다.
.....인간은 하찮은 씨앗에 불과하다. 어느 날 문득 어디서든 돋아나는 새싹같이 불쑥 세상에 태어난다.
어느 싹은 왕궁의 정원에, 또 어느 싹은 농부의 텃밭에, 또는 황무지의 가시밭에...
씨앗이 땅을 어떻게 고르랴... 새싹은 스스로 돋아난 땅을 운명이라 여기고 자란다.
행여 상할세라 정원의 화초로 정성껏 길러지는 씨앗이 있는가 하면, 잡초로 뽑혀져 짓밟히는 새싹이 있고, 광야에서 꿋꿋이 거목으로 자라는 새싹이 있게 마련이었다. 가시밭에 둘러싸여 평생을 괴로워하며 자라는 새싹도 있듯이...
느닷없이 이렇게 흩뿌려지는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의 결론은, 삶의 씨앗이란 그것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유를 알 수 없듯이, 그 씨앗을 소홀히 하여야 할 이유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면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렇게 흩뿌려지는 삶들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흩뿌려지는 삶도 있다는 것이었다.
마굿간의 구유에서 돋아난 어느 싹처럼....
그리고 그들의 담론은 그렇게 흩뿌려지는 삶의 상처에 대해 집중되곤 했다.
흩뿌려지는 씨앗도 누구에 의해 가꾸어지느냐에 따라 앞날은 도무지 알 수 없게 된다. 이소자키는 야스퍼스를 존중했다.
야스퍼스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이유 속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았던 실존 철학자였다. 이소자키는 그렇게 흩뿌려진 삶을 위해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을 구했고, 어느 날 해외에서 내던져진 한 아기를 입양하였다.
그 아기가 어디에서, 왜 내던져졌는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 아기가 임마뉴엘이었다.
이소자키는 그렇게 임마뉴엘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부여했다.
데이빗은 실존의 존엄성을 대하는 이소자키의 고결함에 고개를 숙였다.
친부모도 버리는 자식을 누구라서 거두고 싶겠는가. 그런 고결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늘의 예정 명령인가.
인간은 한번만 내던져지는 것이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아기를 입양한지 1년이 채 안되어 이소자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세상의 불모지에 내던져진 아기.
데이빗은 세상에 다시 내던져진 친구의 양아들을 보며, 흩뿌려진 삶과 거두어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의 의미에 고뇌했다.
데이빗은 이소자키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의 양아들을 입양하였다.
아기의 이름은 바뀌었다.
세상의 하나, “세이치”라는 일본이름에서, 신과 함께 라는 “임마뉴엘”로.
불과 네 살이 되지 않은 임마뉴엘에게 아버지가 셋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데이빗이 임마뉴엘에게 말해 준 전부였다.
“임마뉴엘. 미안하구나. 나도 너만큼 너에 대해 모른단다. 너의 친부모가 누군지, 또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이소자키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젠가 너는 알 수 있을거야...너의 부모, 너의 고향... 그런 것들은 모두 너의 존재 속에 있을 테니까.
임마뉴엘...알겠니?
사람은 한계상황에 부딪쳐 좌절할 때 진정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죽음이든 고뇌든 죄악이든 숙명적인 한계를 피할 수 없다면, 이겨내기 위해 맞닥뜨릴 때 그 각성이 바로 진정한 너, 너의 실존이라는 걸.
그러니 임마뉴엘. 너의 실존을 네가 찾아라. 그것은 바로 네 안에 있단다.”
그 후로 그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신비롭고, 열어보고 싶은 미래의 보물상자를 눈앞에 둔 나이에 그는 과거의 암흑을 향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광부가 되어 그 짧은 인생에 그토록 긴 사연이 묻혀있을 어느 탄광 속으로...
암흑 속에서 탄맥을 찾기 위해서는 눈을 뜨고 찾는 것보다 눈을 감고 더듬는 것이 나았다. 그는 눈을 감고,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과거가 들려주는 자신과의 대화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5.
그의 뇌리에 어렴풋하게 빛바랜 사진처럼 남아있는 환상이 있었다.
언제, 왜 그 사진이 머릿속에 박힌 것인지 모른다. 양부모와 살면서 보았던 광경은 아니었다. 그것은 잠재의식으로 남아있는 과거의 환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석양의 모습이었다.
구름이 불타오르듯 붉은색으로 활활 타는 하늘 끝자락의 바다 속으로 엄청나게 큰 주홍빛 태양이 빠져 들어가는 환상이었다. 강렬한 모습이었다.
임마뉴엘은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또 하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환상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한 그루가 아니었다.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 트리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 또한 살면서 본 적이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환상...
그것을 환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악몽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보이는 알 수 없는 얼굴들....흑인, 백인, 황인...그리고 파도처럼 들이닥치는 알지 못하는 두려움, 어두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임마뉴엘은 그 환상 속의 그림들을 영혼에 새기고자 했다. 그 환상 속에 친부모와 고향이 있을 것이라는 신앙이 생기기 시작하고부터였다.
‘너의 부모, 너의 고향... 그런 것들은 모두 네 안에 들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은 복음이었다.
성인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그는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움직이는 장면 속에서 정물의 그림을 포착해내곤 했다.
그의 눈동자는 카멜레온의 눈처럼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색깔을 보았고, 그의 눈꺼풀은 카메라의 셔터처럼 순간포착에 뛰어났다. 그 구도를 사진에 담았다.
그는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가 세계 곳곳의 절경을 담는 사진여행을 떠난 것은 사진작가로서 당연한 발걸음이기도 하였지만, 그의 내면이 명령하는 바, 그의 실존을 찾기 위한 어두운 탄광 속 광부의 첫 발걸음이기도 했다.
6.
사람들은 뜨는 해와 지는 해를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다의 사진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진작가의 예술성은 여기에서 빛난다.
임마뉴엘의 눈은 정확했다.
일출의 해는 노란빛이 강하고 일몰의 해는 붉은 빛이 강하다...
그것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색깔의 파장의 차이 때문이었다...
유독 그가 찍은 석양의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침잠하면서 선해지는 감동과 가슴에 밀려오는 파도를 눈물로 느끼는 이유는 이 파장의 차이마저 그의 사진에는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석양의 사진을 찍었다.
세계 3대 석양이라고 하는 그리스 산토리니 섬, 남태평양의 피지 섬, 말레이지아 코타키나발루는 그의 단골 사이트이기도 했다.
그는 두 개의 렌즈를 사용하였다. 육안의 렌즈와 심안의 렌즈였다.
카메라로 본 사진과 마음으로 본 두 사진을 오버랩시켜 보았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석양의 사진과 일치시켜 보고자 한 것이었다. 일치되는 경치는 없었다.
제법 근사한 것이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이었지만, 그의 심안 속의 석양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태양은 하나이지만, 석양은 하나가 아니다. 구름과 하늘과 바다에 따라 석양은 늘 변하는 것이고, 하루라도 같은 석양의 경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상 속 석양의 그림은 변함이 없었지만 현실 속 석양의 사진은 늘 변하였다.
석양의 바다는 여러 번 더 와야 할 곳이었다.
겨울이 되면 더 분주해졌다. 크리스마스 사진은 자연을 찍는 것이 아니었다.
해마다, 장소마다 트리를 가꾸는 사람에 따라 모습이 달랐다. 그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모습은 도시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호텔이나 백화점주변의 가로수나 광장 또는 공원에서였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트리에 도시는 동화의 환상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기억에 새겨지지 않는 어린이는 없으리라...
핀란드의 잣나무, 캐나다의 전나무, 노르웨이의 소나무들은 겨울이 되면 크리스마스장식과 등불로 빛났다. 온 마을의 잣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한 핀란드의 작은 마을의 경치는 그에게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것들도 그의 환상 속의 크리스마스 트리와는 차이가 있었다.
석양과 크리스마스 트리.
이 두 가지 소재와 주제로 그는 사진전을 개최하곤 했다.
왠지 불일치하는 이 두 가지 소재를 왜 택하고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는 설명이 어려웠다. 그것이 화제였다. 겨울이 지나 열리는 그의 사진전은 동호인들 사이에는 개성있는 사진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조화되지 않는 묘한 불일치에서 알 수 없는 추억의 동심을 불러낸다...’
그의 사진전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이었다.
그의 사진전 한 구석에는 커다란 석양이 그려진 그림과 온 숲이 크리스마스 트리로 들어 차 있는 그림 두 장이 걸려 있었다.
임마뉴엘의 환상을 그린 그림이었다.
아버지 데이빗은 임마뉴엘이 그린 이 그림 두 장이 친부모와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표현으로 새겨져 가슴이 저몄다.
7.
“그래, 수고했네...알 수 있었던가? 마이클?”
데이빗은 친구 마이클에게 살며시 다가가 귓속말로 물었다.
“그렇다네. 의외로 간단히 분석되더군. 데이빗...
임마뉴엘은 한국인이네...전형적인 한국인 혈통이야. DNA상으로는....”
유전생물학 교수인 마이클은 데이빗에게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왜 진즉에 DNA분석을 하지 않고서... 임마뉴엘의 근본을 훨씬 먼저 알았으면...”
“음....그만한 이유가 있었네.”
데이빗은 이소자키의 말이 생각났다.
‘그 아기가 어디에서, 왜 내던져졌는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다 같은 신의 아들이니까...그것은 의미가 없네. 어떻게 가꾸는가가 사람이 할 일이라네.’
타당한 말로 받아들였었다. 존경하는 이소자키...
그러나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임마뉴엘을 기르면서 깨달았다.
데이빗이 입양아를 기르면서 겪었던 것은 매일 매일의 경이였다.
도무지 무엇이 이 아기의 내면에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양아버지는, 아기가 보여주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재능에 놀라곤 하였다. 부모의 유전자가 이어져 꼭 닮은 백인 아들들의 행동과는 궤도가 달랐다.
그의 무한한 내면의 가능성에 놀라면서도 두려웠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상에 있듯이, 미래도 현재의 연속선장에 있을 것이었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를 알아야 한다.’
어느 날 그것이 아들을 위해서 부모가 할 일이라는 선한 확신이 섰다.
데이빗은 임마뉴엘 몰래 그의 과거를 탐색하는 탄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이클에게 은밀한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
‘그는, 사진과 그림에 탁월한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감수성이 매우 예민하여 표현에 절제가 있지만 그 표출은 강렬하다.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집착이 강하다. 혹시 그의 친부모가 그러하지 않을까?’
또 은밀히, 데이빗은 임마뉴엘의 과거를 추적하기 위해 국무부와 이민국에 입양에 관한 서류를 조회하여 보았지만, 애초에 일본인이 입양한 해외입양아의 국내 입양에 관한 복잡한 사정과 개인 정보보호 등으로 인해 임마뉴엘의 친부모를 추적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자료를 찾을 수는 없었다.
미국의 입양제도는 연방법과 주법으로 분산되어 있어, 입양아기의 지위가 불안정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극단적으로 불행해진 사례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디선가에서부터 흩뿌려진 씨앗들...
그것들은 따스한 대지의 품이 그립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엄마 보고 싶어 울지요.’
이런 한국의 동요에 데이빗은 눈물이 났다.
자신은 아침 부모였다. 저녁 부모가 필요한 건 새 뿐만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 저녁이 깊어 갈수록....
어느 날 데이빗은 한국에 입국하였다. 임마뉴엘이 한국인임을 안 이상 한국이 과거의 탄광일 터였다.
복지회, 봉사회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입양기관을 다니며 그는 임마뉴엘의 입양당시 생년월일과 사진을 보여주었다.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온몸이 지쳐가며 절망에 찬 포기를 앞두고 그는 경찰의 실종자 조회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그에게는 입양당시의 임마뉴엘의 사진 한 장만이 희망이었다.
20여년 전 실종된 수없는 아기의 사진들...
데이빗은 고개를 흔들며 경찰이 제공한 사진첩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데이빗에게는 다 똑같이만 보이는 얼굴이었다.
사진첩을 덮으면서 언뜻 눈에 띄는 얼굴이 있었다. 그것은 사진이 아니고 그림이었기 때문인듯도 했다. 한 장의 초상화였다.
임마뉴엘과 왠지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반 호기심으로 데이빗은,
“누구인가요. 이 아기 그림?”
하고 물었다. 여직원은 아기의 초상화로 보이는 그 그림을 보며,
“오래되었군요. 자료에는 연락처가 코타키나발루로 되어 있네요.
그곳의 주소가 있긴 있는데 20년이 넘었어요. 한국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직원의 명함만 달랑 들고 그는 미국으로 귀국하고 말았다.
임마뉴엘에게 해줄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8.
임마뉴엘의 사진 개인전 마지막 날이었다.
마이클이 데이빗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는 귓속말로,
“한국에는 잘 갔다 왔나? 성과는 있고?
데이빗. 임마뉴엘 잘 키우게.
그에게 위대한 유전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네. 그림이네. 그의 사진에서도 보이지. 틀림없네. 그는 대단한 화가가 될 수 있네. 아마도 친부모 중에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분이 있을거야.
미안하네만, 예술가의 재능은 유전이야...틀림없어. 대 화가야...”
그는 데이빗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였다. 복권이라도 당첨됐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임마뉴엘의 사진을 새삼스레 하나 하나 감상하였다.
그리고 임마뉴엘이 그린 두 장의 그림 앞에 섰다.
“데이빗... 이 그림 내가 사겠네. 자네가 중재해 주게...”
눈을 다시 찡긋하였다.
“장래에 대한 선투자란 말이지...
그리고 이 그림은 영혼이 살아있어. 영감이 흐르는 그림이란 말일세. 걸작이네.
자세히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니야. 별들이 가득 내려앉은 숲 속 그림이지...
그렇지 않나? 이 그림 정말 탐이 나네.”
데이빗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그 그림은 풍경이 아니야. 임마뉴엘이 상상 속으로 그린 그림이라네. 어릴 적 어떤 기억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그림만은 안 팔 걸세.”
이번에는 마이클이 고개를 흔들었다.
“상상? 아니야...
분명히 어딘가에 있는 그림이야. 본 적이 있어. 그래. 맞았어. 거기야...
거기와 아주 흡사해. 상상화가 아니란 말이네. 그곳에 가면 또 그릴 수 있어.”
“...........어디?”
“코타키나발루... 거기 숲속이야. 아주 비슷해...”
데이빗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코타키나발루...코타키나발루...
왜 또 그곳이란 말인가? 아기의 초상화를 그려서 남긴 어떤 부모님이 사는 곳.
코타키나발루...
혹시 그곳에 어떤 운명의 손길이라도?
9.
“임마뉴엘. 코타키나발루 갔다 온 적 있나?”
“예.”
“오, 그래. 거기서 숲 사진을 찍어왔나?”
임마뉴엘은 아버지를 멀건히 바라보더니,“아버지. 코타키나발루는 석양이 유명한 곳이지요. 그곳 석양이야 여러 번 찍었지요. 숲속이 아니고요.”
“그렇지. 그런데, 네 그림이 거기 숲과 아주 비슷하다는 거야. 누가 그러는데...”
임마뉴엘은 다시 아버지를 멀건히 바라보았다.
“그 그림은 제가 상상으로 그린 크리스마스 트리잖아요...
코타키나발루는 겨울이 없어요. 크리스마스 트리가 어울리는 곳이 아니잖아요.”
대화가 더 이어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데이빗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임마뉴엘. 우리 코타키나발루에 가보자. 나는 한 번도 못 가보았어. 석양이 그리도 유명하다니...”
“좋지요. 그 곳의 석양은 몇 번을 봐도 영혼을 파고드는 것이 있어요.”
아버지와 아들은 코타키나발루로 떠났다.
10.
코타키나발루 현지 가이드의 안내 멘트는 쉴 사이가 없었다.
“....코타키나발루의 코타는 ‘도시’라는 뜻이고 키나발루는 '영혼의 안식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이 항구에 오셨으면 꼭 세 가지를 체험하셔야 합니다.
석양의 낙조, 맹그로브 반딧불이 숲, 그리고 코타키나발루 햄버거랍니다...”
코타키나발루의 낙조...
황혼녘에 출발한 낙조여행은 바다가 가까워지면서 기대가 고조되었다.
어느 마을을 지나 숲이 있는 언덕을 넘어, 갑자기 나타나는 바다...
좌우로 탁 트인 백사장과 드문드문 서 있는 열대나무,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하늘... 백사장에서 본 수평선이 아득히 멀었다.
저녁놀이 짙어지면서 주위가 연한 오렌지 색, 주황색, 붉은 주홍색등으로 변하며 서서히 물들어갔다. 황혼에 구름 색깔도 시시각각 변하면서 떨어지는 해가 바다 속으로 잠겨들기 시작했다.
바다에 반쯤 잠기면서 길게 뻗어지는 레드카펫같은 빛의 주단.
태양은 이글거리면서 서서히 함몰되어 갔다.
바다 속으로 식어가는 이 하루가 그리도 아쉽다는 것일까...
냉큼도 아니고, 그렇다고 머뭇거림도 없이 석양은 두 팔을 들고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끝까지 이쪽을 응시하면서...
촛점이 없는 눈빛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임마뉴엘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가슴이 저며오는 코타키나발루 석양의 낙조였다.
바다에 지는 해를 왜 처음 보겠는가?
데이빗은 이곳의 석양에서처럼 묘한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곳은 보지 못했다.
수평선이 멀어서였을까...
바다에 지는 해가 그렇게 서글픈 감동을 줄 수가 없었다.
해가 떨어지자 급격히 저물어갔다.
가이드는 서둘러 두 사람을 안내하였다. 바닷물에 잠겨있는 맹그로브 숲이 다음 손서였다. 정박지에는 관광객들이 벌써부터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장이 없는 작은 나룻배.
모두들 몸을 바짝 붙여 배 난간에 기대어 섰다.
배가 서서히 숲속으로 들어갔다. 주위는 어느덧 캄캄한 어둠속으로 둘러싸여 갔다.
휘들어져 서 있는 양안의 맹그로브나무가 빛을 삼켜 버리기 때문이라 했다.
“쉬잇....”
캄캄한 어둠속에서 가이드가 소리를 죽여가며 푸른색 후레쉬를 꺼내 켰다.
반짝반짝...
암호에 응답이라도 하듯 숲의 깊은 곳에서 빛이 하나 반짝했다.
후레쉬를 다시 켰다. 빛이 몇 개 더 반짝거렸다. 이윽고 후레쉬 불빛에 따라 숲의 여기저기서 반짝거리며 켜지는 불빛들...하나가 켜지면 덩달아 켜진다.
세상이 수많은 작은 별들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반딧불이들이 빛의 합주를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맹그로브 숲은 숲 전체가 반딧불이의 빛으로 가득했다. 기막힌 장관이었다.
반딧불이는 곧 숲속에서 나와 배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몸에 붙어서 반짝거리고, 허공에서 춤추며 반짝거리는 작은 별들의 향연에 사람들의 눈은 황홀경에 빠졌다. 온 숲속의 나무가 반짝거렸다.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작은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정말 멋지지요.
겨울이 없는 이곳에서 이렇게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밤마다 켜진답니다.”
“아, 아...!”
짧고 깊은 신음소리가 임마뉴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데이빗은 임마뉴엘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어떤 표정으로도 표현이 되지 않을 경탄, 그것은 이 세상에 맨 처음 태어난 아기가 토해내는 울음이었다.
“이것이었던가? 상상 속의 크리스마스 트리의 숲....
아! 그 석양...”
임마뉴엘은 눈을 감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반딧불이 숲의 관람, 크리스마스 트리의 향연은 이렇게 끝났다.
가이드는 용의주도했다. 저녁 늦게 배가 출출한 관광객들에게 마지막 코스로 안내하였다. 코타키나발루 햄버거 집이었다. 가이드가 사전 주의사항을 말해 주었다.
“이 햄버거 집은 특이합니다. 주문하는 사람이 얼굴을 주인에게 보여주어야 해요. 그 이유는 주인이 손님의 얼굴을 보고 그 취향에 맞게 햄버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데 일반 햄버거와는 다릅니다. 아주 맛있습니다. 가격도 저렴하지요. 예전에는 식당이 그림으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림이 다 없어졌어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명소가 되었습니다.”
햄버거 집은 젊은 관광객들로 북적댔다.
손님들은 재미삼아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주인은 미소로 답하면서 햄버거 주문을 받았다. 임마뉴엘과 데이빗도 주문대에 가서 얼굴을 주인에게 보여주면서 주문을 했다. 주인은 두 사람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주인과 인간적인 아이컨택을 한다는 따스한 의미라고 했다.
데이빗이 가이드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식당, 언제부터 있었나요?”
“20년이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인이 시작하였지요. 꽤 돈을 벌었어요. 컨셉이 특이했고, 햄버거의 질과 맛이 참 좋았습니다. 관광책자에도 등록이 되어 관광객들과 젊은이들로 붐볐지요. 지금은 주인이 바뀌었지요. 얼마 전에...”
“한국인이? 그림이 많았다는 건....?”
“그림이 많이 걸렸었어요. 얼굴 그림요. 여러 각도의 여러 모습이었는데 사실성과 예술성이 뛰어나 많은 사람이 감탄하곤 했지요. 주인이 대단한 초상화 화가였다나 봐요.”
그러면서 가이드는 임마뉴엘의 얼굴을 살짝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손님도 그 얼굴과 비슷하군요. 멋진 얼굴...하하하. 농담입니다.”
데이빗이 임마뉴엘의 얼굴을 보았다. 데이빗이 심각하게 물었다.
“그 주인은 지금 어디 있죠?”
“돌아가셨답니다...”
“예?”
“주인이 돌아가셔서 식당을 그만 두고 한국으로 갔다는 말이 있어요. 참 좋은 분들이었는데...”
햄버거가 나왔다. 과연, 젊은 임마뉴엘과 나이가 있는 데이빗의 취향을 달리 보았는지 햄버거의 맛이 달랐다. 재료를 풍부하게 쓰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오고 싶은 유니크한 맛과 내용이었다. 헛된 이름이 아니었다.
맛에 홀렸는지 정신없이 먹고 있는 임마뉴엘을 보면서 데이빗은 먼 데를 쳐다보았다. 한국의 복지회를 방문했을 때 여직원의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오래되었군요. 코타키나발루에 사는 걸로 되어 있네요. 주소가 있긴 있는데 20년이 넘었어요. 한국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코타키나발루의 석양과 반딧불이 숲속의 크리스마스트리, 햄버거와 얼굴그림...
어떤 확신이 솟아나고 있는 것 같았다. 임마뉴엘의 내면에 있었던 환상의 기억들은 이곳과 연관성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임마뉴엘, 너의 부모, 너의 고향... 그런 것들은 모두 네 안에 들어 있단다...’
데이빗은 이소자키가 임마뉴엘을 입양하면서 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야스퍼스가 말했지.
‘실존한다는 것은 선택하지 않았고 연관되지도 않은 조건 속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실존은 스스로 책임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선택할 자유를 포함한다고...
실존은 실존자들간에 소통하는 것이라고...
진실은 소통하려고 애쓰는데서 나온다고...’
그렇잖은가? 소통이란 사랑 아닌가? 우리는 모두 내던져지거나 흩뿌려진 존재들이야. 우리끼리 사랑해야 한다네.”
소통하고 확인하고 선택해야 한다. 임마뉴엘의 실존을 위하여...임마뉴엘과 함께...
데이빗은 다시 한국에 가기로 했다.
11.
“오늘 기분은 어때? 날씨가 참 좋은데....”
어머니는 이른 아침 방문을 열며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들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 벌써 일어났구나. 수염이 조금 자란 것 같네..오늘은 수염 손질 좀 할까?”
어머니는 앉아 있는 아들의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아들은 가득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 가느다란 연필을 집어 들었다. 까끌까끌한 수염 자국을 정성스럽게 손보기 시작했다.
턱에서 구레 나루까지의 수염자국을 세심하게 다듬는다.
어느새 아들은 멋진 수염이 자란 잘 생긴 젊은이가 된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이때 방문이 빙긋이 열렸다.
“여보. 여보...음. 여기 있었군.
오늘은 아침부터 얼굴손질이요? 좋은 꿈이라도 꾸었소?”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손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글쎄요. 우리 공석이가 오늘은 활짝 웃네요. 모처럼만이네요. 좀 더 활기찬 모습으로 그려볼까 해서...”
어언 25년....
화가인 어머니는 초상화의 달인이었다. 그녀의 화법은 독특했다. 몽타주 화법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변모하는 사람의 얼굴을 유추하면서 그리는 화법이었다. 사람의 얼굴은 세월이 지나면서 모습이 바뀌는 정형이론이 정립되어 있다.
수염이 생기고, 주름이 생기거나 깊어지고, 아래턱이 변하는 모습은 일정한 법칙이 있어, 몽타주 화가들은 얼굴 사진을 보고 나이와 성격등을 짐작한다.
어머니는 이 분야에 일가견이 있었다.
“공석아....”
아들의 수염을 그리다가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보고 싶어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과 얼굴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아들의 조금씩 변하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나왔다.
25년 전.
세 살 난 공석을 안고, 부부는 보고 싶었던 코타키나발루의 황혼과 빈딧불이 숲 속 관광에 올랐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들은 혼자 걸어보려고 한사코 엄마의 손을 뿌리치며 천방지축 걸음을 떼던 나이였다.
미술 선생님을 하던 어머니와 펜션에서 요리를 하던 아버지...
젊은 부부는 서해안의 바닷가 전망좋은 터를 잡아 펜션을 짓고, 주말이나 휴가철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방을 빌려주곤 했다.
손님이 없는 평일이면, 아내는 바다에 지는 낙조의 황홀한 광경에 넋을 잃다가, 화구를 꺼내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
재능있는 화가였지만, 아내는 이로써 족했다. 행복했다.
펜션의 뒷산에 있는 소나무 숲 속...
아침이면 숲 속 길을 산책하면서 소나무 숲의 날다람쥐, 청솔모, 까치가 있는 상쾌한 경치를 그려 펜션의 방들을 장식하곤 했다.
손님들은 바다와 소나무 숲이 있는 이 펜션을 좋아했다.
아침이면 소나무 숲의 청량한 공기를, 점심이면 숲 속의 고즈넉한 그늘 길을, 저녁이면 황혼의 붉은 바다에 취하곤 했다.
사람들은 이 펜션에 와 보곤, 코타키나발루의 노을과 반딧불이 숲에 결코 못지않은 곳이라며 경탄해했다.
코타키나발루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사람들이 세계3대 석양이라고 하는 코타키나발루를 말할 때마다 그곳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부부는 코타키나발루에 꼭 가보자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어느 해, 부부는 어린 공석을 안고 코타키나발루로 떠났었다.
과연 그 곳은 그 곳이었다. 평생에 한 번은 보고 가야 할 곳이었다.
어린 공석도 바다에 지는 붉은 해를 보고, 밤의 맹그로브 숲속의 반짝거리는 반딧불이를 보면서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더욱 즐거워하던 젊은 부부는 한국에 돌아가면 서해바다에 있는 펜션의 경관도 이처럼 꾸며 보리라 생각하며 해가 지는 바다와 빈딧불이 숲 속 사진을 담아왔다. 아들 공석의 해맑고 귀여운 미소를 짓는 얼굴과 함께...
귀국하는 코타키나발루 공항은 관광객들로 연신 북적였다. 더운 날씨에 줄을 서서 출국을 기다리던 그 날.
어떤 사람이 부부의 여행가방을 들고 뛰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쫓아가 가방을 되찾아 돌아왔을 때 엄마 옆에 있어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을 찾기 위해 북적거리는 공항의 온 구석을 뒤지고 비행기 이륙까지 연기하였지만 아이를 찾을 수는 없었다.
부부는 발을 동동 구르며 현지 경찰과 대사관에 신고를 하고, 소식이 올까 며칠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국에 돌아 왔지만 그때부터 세상은 이제까지의 세상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현지에 연락을 해보고 기다려 봤지만 소식은 감감했다.
어머니는 하루도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그 어린 아들이 낯설고, 말도 못하는 타국 땅 공항에서 엄마를 잃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서러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아들이 무서워하면서 울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꿈에서도 소스라쳐 놀라 깨곤 했다.
1년, 2년... 세월이 흘렀다.
삶이 삶 같지 않은 삶이었다.
부부는 스스로 아들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아들의 사진을 보고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 그림을 그렸다. 잃었을 때보다 두 살 많은 공석의 얼굴이었다. 한국에 있는 모든 미아보호소와 복지회에 공석의 소식이 있으면 알려달라며 주소와 이 얼굴그림을 남기고 부부는 코타키나발루로 떠났다.
그 곳은 여전히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이렇게 낯선 이국땅 관광지에서 어린 아들을 찾기란 코타키나발루 백사장에서 진주를 찾는 것과 같았다.
그렇지만,‘언젠가는 만날 거야. 살아만 있다면...그 때 아들 얼굴을 못 알아보아서는 안되지...’
화가인 어머니가 해마다 성장하며 변하는 아들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들의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해안가에서 햄버거 식당을 열었다. 햄버거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값싼 식품이었다.
‘코타키나발루에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우리 아들 공석이도 햄버거를 먹으러 이곳에 올지 몰라...값싸고 맛있을수록 소문을 듣고 우리 아들도 더 일찍 올 수 있을 거야. 그때 공석이 얼굴을 몰라 봐서는 안되지... 반드시 손님들 얼굴을 보아야 해...
10년이 가도. 20년이 가도...’
아버지는 햄버거를 주문하는 손님들의 얼굴을 일일이 보고 햄버거를 만들었다.
얼굴을 보고 취향에 맞추어 조리를 한다는 전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10년, 20년이 지나도 아들 공석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은 부부의 삶의 의욕을 서서히 떨어뜨리게 했다.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미 잃은 아들에게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새 인생을 찾으라는 진심어린 조언을 하곤 했다. 옳은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무도 모르는, 피부색도 말도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어린 것이 얼마나 무섭고 애가 타서 엄마를 찾으며 울었을까...엄마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이 생각만 하면 어머니는 도저히 아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떠날 수가 없었다.
아들이 커가는 얼굴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더욱 그러했다. 미소짓는 아들의 얼굴을 그리다 보면 살아있는 아들이 ‘엄마!’ 하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들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햄버거 식당의 주방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뇌졸중이라 했다. 죽은 목숨이었다.
부부는 스스로의 운명에 한탄을 하며 짐을 쌌다.
햄버거 식당을 할 수 없는 이상 코타키나발루에 살아야 할 이유란 없었다.
한국으로...
다시 서해바다의 펜션으로 돌아 온 지가 1년이 넘어섰다. 아버지는 휠체어에 기대는 장애는 있었지만 생명에 문제는 없었다.
그들은 남은 인생을 포기하고, 펜션만을 운영하면서 조용히 살기로 했다.
가끔 어머니는 공석의 방을 찾아 얼굴을 고쳐주면서...
아기는 수염이 자라는 어엿한 청년의 얼굴로 성장해 있었다.
아버지는 펜션의 숲속에 겨울이면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코타키나발루의 반딧불이 숲처럼...
사람들은 물밀듯이 펜션을 찾아왔다. 그러나 밀려드는 손님과 쌓이는 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연필로 그린 아들 공석의 얼굴 그림만을 보물처럼 간직했다. 펜션은 점점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초상화의 대가가 사는 펜션. 펜션에 오는 손님들은 초상화를 그려 달라 했다. 화가는 미소를 띠우며 그려주었다. 사진보다도 더 정교하고 예술적인 연필 초상화였다.
12.
임마뉴엘과 데이빗은 산마루턱에 자리 잡아 경사진 좁은 산길을 한참동안을 걸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힘이 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찾아 본 한국의 바닷가였다. 산길은 소나무 이파리들이 끝이 닿을 듯 말 듯 모시 천처럼 연이어 있어 언뜻 언뜻 보이는 하늘을 보며 숲길을 걷는다는 것이 그렇게 상큼할 수가 없었다.
숲길이 끝나는 고개를 넘자마자 갑자기 나타나는 장면.
아이맥스 화면이었다. 사파이어 하늘과 에메랄드 바다. 보석조각처럼 반짝이는 파도. 바다 속으로 지는 해의 시시각각 변하는 붉은 색깔에 데이빗과 임마뉴엘은 탄성을 참을 수 없었다.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이 여기에 있었다.
이윽고 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가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빙고!”
간판은 “코타키나발루 햄버거”였다.
코타키나발루의 햄버거를 먹으면서 데이빗은 확신이 섰었다. 임마뉴엘의 친부모임에 틀림없다...
데이빗은 임마뉴엘을 껴안으며 말했었다.
“임마뉴엘, 너의 친부모 중 한 분은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너의 부모님은 너를 애타게 찾으셨다. 20여년 간을... 임마뉴엘.. 너는 버려진 아기가 아니었다. 분명히 지금도 너를 잊지 못하고 계실거야. 너를 사랑하신다...”
임마뉴엘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나를 낳으신 부모님이 살아계실까? 나를 알아보실까? 나를 사랑하실까? 그렇지만, 왜? 나를...?”
임마뉴엘은 환상 속에서 보인 어두운 악몽의 그림자가 떠올려졌다.
검은 얼굴, 흰 얼굴, 황색의 얼굴....어른거리는 그 어둠...무서움...
고개를 흔들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깊숙한 내면의 환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괴로움이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임마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코타키나발루의 공항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으로...한국으로...
그러나 그 뒤가 문제였다. 죽었다는 한국인 식당주인의 연고를 찾는다는 것은 난제중의 난제였다.
붐비는 공항에서 바삐 돌아다니며 움직이는 저 숱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짐들...
영혼은 영감으로 실존하는가...
임마뉴엘이 번개처럼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 대사관에 가요!...”
그들은 말레이시아 현지 영사관과 대사관을 찾았다. 20여년 전 기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20여년 전 신고된 미아의 실종 신고...
하얗게 바랜 잉크 빛으로 기록은 짧게 남아 있었다.
“...박공석. 3세, 남아. 코타키나발루 공항에서 실종. 보호자... 주소...”
한국에 기록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보호자의 한국 주소를 확인하였다. 또렷하게 써 있었다. 어머니의 필체로...
한국 서해안의 작은 해안가였다. 그리고 지체 없이 이곳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과연 그 주소가 살아 있을까?..’
의심과 의구심에 잠이 오지 않았지만, 운명의 그 주소는 틀림없었다.
햄버거 식당의 요리사는 젊은 남자였다. 그들은 조리사에게 얼굴을 보여주며 햄버거를 주문했다. 코타키나발루의 햄버거와 비슷했지만 그 맛은 아니었다.
데이빗이 물었다.
“사장님을 혹시 만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지요?”
“혹시 코타키나발루 햄버거 사장님 아니신가 해서..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젊은이는 싱긋 웃으며,“사장님은 요리를 못하십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 안계십니다. 연필사러 도시에 가셨어요.”
“연필?”
“모르셨어요? 사장님이 화가시라는 거? 모르시는 분이 없는데...초상화 부탁하러 오신 것 아니에요?”
밤이 늦었다. 하는 수 없이 데이빗과 임마뉴엘은 식당 뒤의 펜션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13.
새소리에 잠이 깬 임마뉴엘은 펜션의 창문으로 밝아오는 아침바다를 보았다. 간밤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온갖 꿈에 시달렸다. 바다 속으로 서서히 지는 석양,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숲,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울부짖던 악몽...
밤새 뒤척이며 날이 밝았다.
그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
시원한 아침의 바다 바람...
아직도 어제저녁에 보았던 석양이 뇌리에 선명하였다.
그렇게 크고 둥근 석양이라니...그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임마뉴엘의 기억 속에 박힌 사진 속의 그림이었다.
펜션은 방이 여럿 있었지만 손님은 임마뉴엘과 데이빗 밖에 없는 듯 했다.
방이 줄지어 있는 복도를 지나자 바다가 보이는 데크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임마뉴엘은 데크의 문을 열었다.
바닥이 목재로 된 넓은 데크에는 그림을 놓는 빈 이젤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데크를 둘러보던 임마뉴엘에게 의자에 앉아 등을 지고 아침바다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히 여인에게 다가갔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에 여인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연필로 누군가의 얼굴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뒤에 서서 그림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림에 열중하고 있는 여인.
임마뉴엘은 여인의 어깨너머로 그려지고 있는 도화지 속의 얼굴을 보았다.
흡....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수가 없었다.
그곳에, 그곳에...
자신의 얼굴이 미소를 머금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 아!
임마뉴엘은...임마뉴엘은....
그때 여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자신이 그리는 그림을 쳐다보고 서 있는 젊은이가 눈에 들어왔다.
여인도 흡..하고 숨을 들이쉴 뿐 내쉴 줄을 몰랐다.
너무도 눈에 익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그립고 그리운 그 도화지 속의 얼굴이었다.
여인은...여인은...
무릎을 털썩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목이 메어 나오지도 않는 쉰 목소리로 가느다랗게 그 이름을 불렀다.
“공석아....”
“엄마....”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일어설 줄을 몰랐다.
엄마는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같은 말만 몇 번이고 되풀이하였다.
“미안해. 미안해. 공석아...너를 못 지켜 줘서. 이 엄마를 용서해라...이 못난 엄마를 용서해...미안하다.”
그들이 부둥켜안고 쏟아낸 눈물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우주안의 그 어떤 액체로도 그것을 재구성하지는 못하리라.
복받쳐 터져 나오는 그 서러움, 그리움, 외로움, 무서움, 괴로움...
그리고 거기에 섞여있는 놀라움, 고마움, 떨리움, 감격, 기쁨, 감사...
곧, 펜션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휠체어에 탄 아버지, 뛰어나온 데이빗...
펜션의 가장 비밀스런 곳에 공석의 방이 있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공석만이 실존했던 조용한 방. 사랑스런 아들의 방이었다.
방안 가득, 그곳에는 아들의 얼굴이 가득했다. 책상에 앉아있는 아들,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 장난치는 아들...작은 얼굴, 중간 얼굴, 큰 얼굴....옆 얼굴, 웃는 얼굴, 찡그리는 얼굴...
아기 얼굴부터 소년의 얼굴, 제법 철난 청소년기 얼굴, 그리고 지금의 수염이 있는 얼굴...
한 치도 틀림이 없는 공석의 얼굴이었다.
펜션의 밤.
소나무와 전나무가 그득한 숲 속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반짝 반짝 빛나는 수천 개의 별빛이 나뭇잎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해마다 장식하여 불을 켜는 크리스마스 트리 숲이었다.
임마뉴엘의 환상에서 본 크리스마스 트리 숲... 바로 자신이 그렸던 그림이었다.
임마뉴엘을 잃은 후, 언젠가는 찾아올지 모를 아들을 위해 단 한 번의 주소도 옮기지 않고 기다려 왔던 고향의 석양과 크리스마스트리 숲 그리고 어머니의 품이었다.
데이빗이 임마뉴엘에게 말했다.
“임마뉴엘...맞지. 네 안에 네가 있다고.. 네 고향과 네 부모님이 다 네 안에 있었다고....”
14.
얼마 후, 코타키나발루 햄버거 식당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작은 얼굴그림이 걸리기 시작했다. 부모가 찾는 아이의 얼굴들이었다.
요리사도, 낙조를 찍는 카메라의 관리자도, 펜션의 임자도,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도 바뀌었다. 새로운 얼굴, 그러나 늘 있었던 얼굴이었다.
임마뉴엘 데이빗. 한국 이름 박공석. 일본 이름 이소자키 세이치...
다 한사람이었다. 같은 내면에 숨어있던 같은 사람...
세상에 흩뿌려진 작은 씨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