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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도적
 
최민호   기사입력  2019/05/08 [16:09]

1.

매연냄새가 코를 찌르는 시내를 벗어나 온종일을 툭툭이를 타고 야자수가 멋대로 자라는 시골길로 들어서서 깡마른 하얀 소가 풀을 뜯는 들판을 수없이 지났지만 목적지는 아직도 멀었다.
열대의 긴 해가 길게 누워 벌판의 끝자락에 팔베개를 베고 누울 즈음 눈앞에 울창한 산이 우뚝 나타났다. 요란하게 달려오던 오토바이 택시 툭툭이가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멈추었다. 이제부터는 걸어야 한다. 
상어 아가리처럼 나무 그림자로 뒤덮인 동굴모양의 입구가 시작되고 있었다. 정글의 시작점이었다.
어둠이 깃드는 이 시간에 정글 숲 속으로? 은근히 겁이 났다.
두 번째 길이라서 친숙할 만도 한데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이드는 망설임도 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숲길은 험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좁다란 길 양 옆은 무슨 나무인지 분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줄기들이 뒤엉켜 있어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겁이 났다.

“숨어서 살기 딱 좋은 곳이지요. 먹을 것도 많고요. 그만큼 노리는 부족도 많았지요. 그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전사를 키웠어요. 식인종이었습니다.”

험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어둠이 본격적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랜턴을 켜 들었다.

‘위험스럽게도....’

불안과 불만이 치밀어 오는 것을 스멀거리는 두려움으로 버무리면서 가이드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바우 길을 넘어서자 한 순간에 길이 넓어졌다.
눈앞에 정글 속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공터가 나타났다. 마을이었다.
어둠은 더욱 짙어져 사물의 윤곽이 간신히 보일 정도였다. 

‘흡!’

형준은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길 양쪽으로 사람들 수 십 명이 웅크리고 서 있는 것이었다.
어둠속에서 창과 칼로 무장을 하고 허리를 구부리고 눈을 번득이며 적을 기다리는 식인전사들의 모습....
손에는 저마다 무기를 들고 있는 듯 보였다. 줄을 서서 나름대로 대오를 갖추고 있었다.

놀라서 얼어붙은 형준을 뒤로 하고 가이드가 그들에게 다가가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한 노인이 뒤돌아서서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형준을 향해 외치는 것이었다.

“풀라풀라. 풀라풀라....”

그리고서는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모두 손에 들고 있는 것에 불을 붙였다.
일시에 주위가 밝아졌다. 촛불이었다.
노인이 형준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형준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가이드가 통역해주었다.

“풀라는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풀라풀라는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신을 영접할  때 하는 말입니다.”

노인이 입을 맞추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땅에 대면서 절을 하였다.
그들은 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2.

통나무와 나무줄기와 짚과 잎으로 엮어 만든 2층집들.
아래층은 기둥만 있는 빈 공간이고 사다리로 2층을 올라가는 롱가 부족의 전통가옥이었다.
촛불을 앞세우고 형준 일행은 마을 촌장의 집으로 향하였다.  
제법 널찍한 집에 다다르자 주변의 집들에서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온 마을의 집집마다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칠흑 같은 밀림의 어둠 속에서 하나하나 켜지는 불빛이 마치 숲 속의 반딧불이처럼 아름다웠다.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앞장서서 걷고 있는 부족의 무리들.

촌장의 집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어린 소년소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 또한 작은 촛불을 손에 들고 형준이 들어오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형준에게 작은 소리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대로 받으십시오. 풍습대로 신을 맞이하는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분들이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

진수성찬이 차려진 상이 방 가운데 놓여 있었다.
상의 한 가운데에는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형준은 그 의자에 앉혀졌다.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형준은 의젓하게 의자에 앉았다.  
촌장이 형준에게 잔을 한 잔 올렸다. 
정글 속 신성한 나무의 수액으로 만들었다는 술이었다.
맛이 오묘했다. 얼굴을 찡그릴 수는 없었다.
형준은 그들의 정성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말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몸짓과 눈빛에서 신에게 드리는 경건함과 감사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촌장에 이어 한 소녀가 그에게 무릎으로 다가왔다.
소녀 역시 술잔을 한 잔 따라 올렸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상상할 수 없었던 환대였다. 

3.    

남태평양의 롱가 부족은 문명과는 절연된 채 정글 속에서 벌거벗고 그들의 전통에 따라 그렇게 살아왔다.
밀림 속에서 열매를 따고 짐승을 사냥하며 부족의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정글을 지켜왔다.
그들은 농사지을 줄을 몰랐다. 사냥이 생활이며 놀이였다. 부족의 전사들은 혹독한 단련을 통해 활과 칼을 쓰는 법을 배웠고, 보기만 해도 섬뜩하게 날카로운 칼을 늘  몸에 지니고 있었다.     
마을 어귀와 집 앞에는 장대를 세워 사람의 해골을 걸어두고 있었는데, 마을을 침범하는 자들에 대한 위협이자 용감한 전사가 살고 있다는 표식이었다.
많은 수의 해골이 걸려 있을수록 그 집의 명예였다.
복잡하고 무서운 형상으로 얼굴과 몸에 문신을 하는 것도 그러한 전통이었다.
여성들은 칼로 나무를 조각하여 전사의 모습을 한 목각인형을 만들어 지녔다. 호신용 부적이었다.

그들의 신은 반딧불이었다.
불빛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공포와 축복...
불빛이 새어나가 적의 표적이 된다는 공포심과 어둠을 밝히는 축복의 의미를 동시에 새기면서, 그들은 반짝거리며 하늘을 날면서, 물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빛을 만드는 반딧불이를 신성하게 여겼다.
반딧불이가 나타나면 두려움과 감사함을 동시에 표하였다.
반딧불이 떼가 나타나 반짝거리면 그것을 신의 계시라 여겼고, 정글에서 일어나는 이유 없는 화재는 반딧불이 신이 자신들에게 내리는 징벌이라고 믿었다.

불빛을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배경에는 그것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불빛을 훔치러 적이 쳐들어온다고 믿어 저녁이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덧문을 닫고 불빛을 피웠다.
나무수액이나 동물의 기름으로 등잔을 만들었지만 귀하기가 황금과 같았다.
그들은 불빛을 신의 선물로 여기고 있었다.
수액을 짜거나 기름을 얻을 때 그들은 무릎을 꿇었다. 
밤을 두려워하는 롱가 부족은 태양의 부족이었다.

부족민들은 여성을 불빛처럼 귀하게 여겼는데 여성은 부족의 후손을 이어가며 노동력과 전투력을 생산하는 원천이었기 때문이었다. 아기를 많이 낳는 여성을 당연히 높이 여겼고 적이 마을에 쳐들어오면 맨 먼저 여성을 피신시켰다. 
집에서도 2층 입구에서부터 아버지, 아들, 엄마, 딸의 순으로 누워 잠을 잤다. 여성을 침범하는 적을 잡으면 목을 잘라 장대에 매달고 인육 먹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무서운 경고였다.

4.

1년 전.
해외 자원봉사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롱가 부족 이야기를 들은 형준은 비상한 호기심으로 이 부족을 방문했었다.  
원시부족들을 현대문명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제한된 관광객들에게 롱가 마을을 공개하는 정부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었다. 오지 의료서비스를 하고 있는 친구의 추천에 의한 것이었다.

전통과 문명을 조화시킨다는 것은 지난한 과제였다.
무분별하게 문명을 유입하는 것은 문화적 유산의 훼손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롱가 부족민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위험한 일이었다.
극히 한정된 프로젝트로 문명을 소개한다고 하였지만 어떤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부족민을 혼란에 빠뜨리곤 했다. 그렇지만 멈춘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혼돈의 초기단계에서 한정된 인원으로 제한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한 형준에게 이 마을에서의 하룻밤 체험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한 가족의 전통 가옥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는데, 흑자갈처럼 반들거리는 그들의 피부와 그들의 눈빛은 이제까지 만나 본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의 눈빛은 감정의 진폭이 컸다. 아이 같은 순진한 눈빛이었다가 삽시간에 육식동물의 매서운 눈빛으로 급변하는 그들에게서 감정을 헤아리기가 어려웠고, 그로인해 매 순간이 무서운 긴장이었다.

어깨를 만져서는 안 된다....
여성에게 말을 걸면 안 된다....
남자의 상처를 쳐다보면 안 된다... 

그들이 먹는 원숭이 요리나 독화살 불기 같은 전통 체험들과 함께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들창문을 닫고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피가 흐르는 날고기를 씹듯 비리고 생경했다. 그곳은 원시인의 전설의 세계였다.

반딧불이 신이 하늘에서 빛을 내려 침입하는 적들을 비추어주어 몰살시켰다는 이야기.
뱀이 먹다 죽은 개구리 몸에서 뽑은 독을 먹으면 신을 만나 계시를 얻는다는 신비한 마약 이야기.
정글 속에 자라고 있다는 움직이는 나무 이야기 등 그들의 이야기는 환각과 환상이 현실로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들과 만나면서 환각과 환상은 형준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부족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고립되고 단순한 삶을 살아 온 부족민들에게 외부인의 출현은 믿을 수 없는 환각이었다.
그들에게 외부인이란 외계인과 다름이 아니었다.
외계인이 타고 오는 자동차, 입고 있는 옷, 먹는 음식, 핸드폰...
특히 부족의 젊은 층들에게 보여진 외계인들의 환각은 더욱 오묘한 환상이었다. 

주장은 다양했다.
원시부족의 보전을 위해 그들의 삶을 온전히 보호하자는 입장에서부터, 그들도 인간인 이상 문명의 세계로 동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각양각색이었지만, 부족의 젊은이들은 출렁이는 물결 위에서 낙엽처럼 흔들리며 어느덧 문명의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롱가 부족의 이야기는 밤이 모자랄 정도였다. 불빛 또한 모자랐다.
통나무집에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방의 맨 구석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등잔을 켜고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책을 읽고 있었다. 
불빛이 약해 소녀는 책에 코를 처박고 읽고 있었다. 등잔 불빛은 그런 소녀의 얼굴과 책의 한쪽 면을 비치면서 한 폭의 단면화를 그리고 있었다. 빛이 그려내는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소녀를 보고 연신 무어라고 야단을 쳤다. 아마도 불빛을 아끼라는 호통이었으리라. 소녀는 곧 등잔불을 껐다.
소녀의 주위가 삽시간에 캄캄해졌다. 소녀의 얼굴도 책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하룻밤의 체험이었지만, 형준의 뇌리에 가냘픈 등잔불빛에 비친 소녀의 책 읽는 모습은 한 장의 그림으로 인각되었다. 눈을 감아도 떠나지 않는 장면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형준은 친구에게 잊을 수 없던 여행의 인상 깊었던 느낌을 감사의 뜻과 함께 편지로 보냈다. 그리고 말미에는,

“그날 밤, 나는 작은 불빛 속에서 책을 읽던 소녀를 잊을 수가 없네.
소녀는 무엇을 읽고 있었을까?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오지의 신비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듯, 소녀는 우리 문명세계의 신비한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불빛이 꺼지면서 모든 것을 앗아가고 말았다네. 소녀의 호기심도 소녀의 꿈도 불빛이 꺼지면서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네. 마음이 매우 어두웠었네.
그래서 나는 소녀에게 불빛을 선사하고자 마음먹었네.
촛불일세.
그 소녀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양초를 보내고자 하네. 내가 보낸 이 촛불로 소녀가 마음껏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
전해주시게나....”

그리고 양초 한 박스를 보냈었다. 매일 한 개씩 켜도 한 달 동안은 충분히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난 후, 형준은 소녀의 촛불이 생각났다. 아마도 지금쯤은 촛불이 다 떨어져 어둠속에서 촛불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다시 한 박스를 보냈다.
형준은 매달 양초를 한 박스씩 롱가 마을에 보냈다. 그리 비싸지 않은 촛불인지라 날짜를 거르지 않았다. 
다시 1년이 지났다.
형준은 소녀 소식이 궁금했다. 롱가 부족마을도 그리웠다. 
그리하여 친구에게 연락하여 다시 그 마을을 찾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맞이하는 촌장과 마을 사람과 소녀들....
형준을 마치 신처럼 환대하고 있는 것 아닌가. 형준은 그들의 과분한 감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5.

향응을 베풀면서 촌장은 말했다.  

“우리는 시간을 가지고 행복을 말하오. 시간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겠소? 시간이란 햇빛 같은 것 아니겠소? 우리는 행복했다오.
외지인들은 옷을 벗고 활을 쏘면서 짐승의 피를 먹는 우리들을 미개인이라고 불쌍히 여기지만 우리가 왜 불쌍한지 모르겠소. TV 못보고 비행기 못타고 핸드폰 없으면 불쌍한 것인가?
우리는 시간을 우리 것으로 하고 살고 있소. 시간에 쫓기는 법은 없소이다. 외지인들이 자랑하는 기계들은 시간을 빼앗는 것 뿐 아니겠소? 시간이 없는 사람이 어찌 행복하겠소? 시간의 약탈자 기계의 노예일 뿐이요.
그런데 그들이 우리 아이들을 유혹하기 시작했소. 나는 외지인들을 다시는 우리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마음먹었소...”

가이드가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형준이 다녀간 후, 롱가 마을은 관광객들의 방문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문명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다. 부락은 자발적으로 고립의 정글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것이다. 아니, 잠시나마 빼앗겼던 외지의 시간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였다.
마을은 다시 고요해지고 밤이 오면 어둠의 적막에 갇혀 버렸다. 그들이 다시 그들의 신에게 귀의하였을 때 난데없이 마을에 양초 한 박스가 도착하였다.

양초는 그들이 알던 물건이 아니었다.
뾰족 솟은 심지에 불을 붙이자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눈이 부셨다.
희고 매끈한 양초기둥은 여인의 살결처럼 부드럽고 만져볼수록 기름진 촉감으로 마을 사람들을 신비감으로 사로잡았다.
불꽃은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하늘거리듯 가냘프게 흔들리며 타는 촛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노랗고 붉은 불빛 속으로 눈이 빨려 들어가, 무아의 황홀경에 빠지곤 했다. 촛불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녹이며 주위를 밝히는 촛불의 축복 아래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다. 다시 신에게 돌아온 부족들에게 반딧불이 신이 주신 축복이라 믿었다.

“촛불을 밝히며 시간을 얻었소이다.
누군가가 보낸 촛불로 우리 마을은 집집마다 밤이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오.
촛불이 오는 날, 우리 마을은 빛의 축복에 가득 찼다오. 마을 전체가 환히 빛났소. 날이 갈수록 초가 닳아 촛불이 꺼져갔소. 가물가물 어두워지다가 마을이 캄캄한 암흑에 휩싸일 즈음 촛불이 또 도착하는 것이었소. 마을 전체가 다시 환하게 밝아졌소. 한 달마다 마을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 신이 된 것이라오. 반딧불이 신의 선물이었소. 한 소녀에게 내린 신의 축복이라고 믿었소. 
오, 신이시여, 그리고 오늘 신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형준은 자신을 융숭하게 환대했던 영문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녀에게 보낸 양초는 촌장에 의해 마을 전체에 배분되었다.    
혼자 볼 수 없이 귀한 선물이기도 했겠지만 소유함이 없이 공동생활을 하는 롱가 부족의 당연한 처사였다. 소녀에게만은 몇 자루가 더 배려되었다고 했다.
30여 가구가 한 달을 쓰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마을에서는 양초를 지극히 아껴 쓴 모양이었다.
하루 밤의 촛불을 생명의 불빛이라도 되는 양 아껴 쓰며 귀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형준은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이 보낼 것을...’

그날 밤 촌장은 가이드와 함께 형준에게 소녀의 집에서 묵을 수 있게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 몽당토막이 된 촛불을 가운데 켜고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차를 끓이고 말린 과일을 내놓는 가족들이 접대는 극진했다.
그들이 이번에는 형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 밤 그들은 상상하지도 못한 미래의 전설을 들었다. 
자전거, 자동차, 기차와 비행기...
숨죽이며 가족들은 형준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들의 눈은 천진한 어린아이의 눈처럼 반짝거렸다.
형준은 조심스럽게 소녀를 찾았다. 소녀는 1년 새에 부쩍 커 있었다. 소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학용품과 책이었다.
색연필과 노트, 그리고 그림책을 본 소녀의 눈빛은 꿈을 꾸는 듯 했다. 
소녀의 엄마는 형준이 돌아갈 때 자신이 정성껏 깎은 목각인형을 선사하였다.

6.

꿈 같은 오지 마을에서 한국에 돌아온 형준은 하루하루가 확고해졌다.
양초였다.
생활비의 반을 양초를 사 모으는데 소비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일하던 식당 일이 끝나면 그는 예식장과 절을 찾았다. 예식장에 따라서는 결혼식 때 신랑신부의 어머니들이 입장하면서 촛불을 켜고 어느 정도 사용한 후 새 양초를 쓰고 있었고, 절에서도 불공을 드린 후 얼마 타지 않고 남은 양초를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안 뒤부터였다.
비록 쓰다 남은 양초였지만, 소녀가 사는 마을에는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쓰다 남은 양초를 매일 수집하여 상자에 모았다.
그리고 한 달이 되면 새 양초와 함께 박스를 포장하여 롱가 마을에 부쳤다.

집집마다 한 박스.
한 마을이 한 달을 쓸 양초였다. 꽤 많은 분량이었다. 항공 우송료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의 봉급은 이런 비용을 대는데 빠듯했다.
형준은 돈을 아껴 저축을 하였다. 1년 후 마을을 방문할 비용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의 생활은 양초 모으기와 저축 그리고 롱가 마을에 대한 상상으로 매일 매일이 지나갔다.

다시 1년이 지났다.
해마다 형준은 롱가 마을을 찾았다.
툭툭이를 타고 밀림의 산속을 걸어 저녁이 되어야 도착하는 오지.
형준이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풀라풀라. 풀라풀라. 풀라풀라....”
 
창날을 세우고,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함성을 지르며 그들은 형준을 맞아 주었다. 천상의 신을 맞이하듯 무릎을 꿇고 발에 입을 맞추었다.
온 마을이 환하게 밝혀졌다. 집집마다 덧문을 열어젖히고 여기에 당신이 보내준 촛불이 빛나고 있다는 듯 온 마을이 촛불을 켜고 형준을 환영해 주었다.
매달 한번 씩 어김없이 도착하는 촛불.
마을사람들은 밤이 낮이 되어 일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의 축복이 그들에게 매일 밤마다 쏟아졌다. 행복이 촛불을 통해 온 마을로 번져갔다.
형준은 롱가 마을의 살아있는 신이 되어 있었다.

성대한 마을의 환영잔치가 끝나자 형준은 다시 소녀를 찾았다.
소녀는 또 눈에 띄게 자라 있었다. 소녀는 수줍은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모르고 눈을 가늘게 뜨고 형준만 바라보고 있었다.
형준은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가방 가득 학용품과 그림책들...
가이드로부터 롱가 마을 촌장이 외지의 어떤 물건도 반입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설마...촛불로 보는 책마저?’
하는 생각과 자신은 마을의 살아있는 신이라는 자부감으로 오로지 준비한 선물이었다. 과연 살아있는 신이 주신 선물만은 허용하고 있었다.

학용품과 책을 본 소녀는 기뻐서 얼굴 가득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소녀는 형준의 손을 잡고 어느 곳인가로 안내하였다.
마을은 눈앞에서 손을 저어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형준이 도착한 곳은 작은 오두막집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작은 방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형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밖에서는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던 방안에 소년소녀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이었다.
방 한가운데 촛불을 켜고 둘러 앉아 형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소년소녀들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이 촛불에 반사되어 형준의 눈을 부시게 했다.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서 촛불이 타고 있었다.
아이들의 무릎 앞에는 작년에 형준이 선물한 노트들이 한 권씩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노트에는 그림책의 그림이 색연필로 그려져 있고, 그 밑에 글자가 또박또박 쓰여져 있는 것이었다.

‘자전거...자동차...’

형준의 가슴에 감동이 밀려왔다.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만들어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 저 아이들이 저렇게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아껴서 쓴 몽당촛불을 켜놓고 몽당연필로 아이들은 꿈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행기...기차...’

7.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형준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롱가 마을 아이들에게 보내 줄 촛불과 학용품.
그들의 꿈이 무엇이겠는가?

저 촛불의 심지가 타는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둠 속에 빛의 세계가 있어...
그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이 있어...
그곳은 빛이 가득하고 환한 곳이라서 무엇이든 볼 수 있고 만들 수 있어...
우리는 촛불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거야...
밝고 아름답고 언제나 빛나는 사람으로...

형준은 양초를 모으는 일에 더욱 열정을 기울였다.
가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형준이 겪은 롱가 마을의 꿈같은 이야기를 했다.
같이 양초를 모으고 사서 보내주자고 했다.
자원봉사...
친구들은 형준을 훌륭하다고 칭찬해마지 않았다. 그리고 기꺼이 돕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두 번이었다.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에 언제까지 손을 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자원봉사는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을 만큼 하는 것이었다. 양초. 그리고 학용품과 그림책...
매달 보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괴로운 일이었다.
혼자서 이 일을 감당한다는 것이 벅차다고 느끼지 않을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눈빛... 마을 사람들이 소리 높여 외치던 환호소리...

‘풀라풀라. 풀라풀라...’

고개를 저으며 형준은 두 다리에 다시 힘을 주고 양초를 모으러 돌아다녔다.
양초를 사고 모으던 어느 저녁.
형준은 무릎을 탁! 쳤다.
양초를 배달하는 택배 트럭을 보면서였다.

“양초공장에 취직하자!”

양초를 만들어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형준의 가슴이 부풀었다.

“양초 만드는 법을 배우겠다고?”

애써 찾아간 양초공장 사장은 형준을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양초는 사양 산업이었다. 양초는 후진국형 산업이라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데 그 기술을 배워 어디에 쓰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초를 보내는 자원봉사를 위해 자신의 인생설계마저 바꾼다는 형준을 보고 더욱 크게 웃었다. 
의식용이나 인테리어용이 아니면 불을 밝히는 양초는 곧 생산마저 감축할 계획이라는 말에 형준은 힘이 빠졌다.

“그렇다면... 롱가 마을 아이들은...”

눈망울에 촛불이 가득 불타고 있던 아이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어쨌든 형준은 양초공장에 입사하여 양초를 만드는 공정에서부터 세세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이 공장을 인수하겠다는 꿈도 꾸어 보았다.
양초공장에 들어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형준은 양초를 값싸게 얻을 수 있었다. 마음껏 양초를 롱가 마을에 보낼 수 있다는 만족감에 매일 매일이 행복했다.
매일 밤의 꿈이 달콤했다.

양초는 매달 어김없이 보내졌다. 학용품과 그림책도 가끔 보내주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형준은 롱가 마을을 찾았다.
롱가 마을 사람들의 형준을 대하는 열광적인 감사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형준이 보내준 그림책과 노트에 그림과 글자를 쓰며 공부하는 소년소녀들은 해마다 몰라보게 자랐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알 수 없는 신비스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글을 가르쳐 주지도, 말을 배우지도 못한 아이들이 글자를 터득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림책의 글씨들을 베껴 쓰면서 단어와 문장의 뜻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문자를 해독하는 학자들이 되풀이되는 단어로 결국 모든 문자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원리였는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그 능력이 몇 배나 뛰어난 것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는데 글로 말을 걸어오는 그들에게 형준은 기적이라도 보듯 놀랐다.

“비행기는 얼마나 빨라요?”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형준은 스스로가 롱가 마을의 신이요, 부락민들은 그의 신도라는 신앙의식마저 자라고 있음을 알았다.
한 원시 마을의 헌신적인 살아있는 신이 되어가고 있는 자기 자신에 혼자 웃음을 지었지만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명감이 더해져만 갔다. 신이라는 자존감이 효모처럼 부풀어 올랐다.
형준은 신이었다...
형준은 이것이 인생의 보람이다 싶었다. 어둠이 깃들 때면, 집집마다 촛불을 켜고 목각인형을 깎으면서 낮의 시간을 연장하며 도란도란 행복해 하는 롱가 마을의 가족들이 생각났고, 잠을 자면, 촛불을 가운데 두고 그림책을 보며 노트에 글씨와 그림을 그리던 아이들이 눈동자가 꿈에 보였다. 양초를 보낼 때마다 롱가 마을이 그리웠다. 사람들이 사랑스러웠다.

촛불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불빛에 노출될까 봐 침입하는 적이 줄었다고 말하던 촌장....
덧문을 닫지 않고 열어두어 불빛을 더 넓게 밝히게 되었다는 수줍은 여인의 미소...
육식동물의 눈빛에서 둥글게 부드러워진 부족 전사들의 눈매...

형준은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형준은 소녀의 엄마가 자신에게 선사한 수호천사 목각인형을 매만졌다.  

8.

양초공장은 점점 사정이 나빠졌다.
재고는 쌓이고, 생산보다는 영업과 수금일로 사장은 밖으로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믿을 만한 사원으로 보았는지 사장은 생산, 경리와 재고 관리마저 형준에게 다 맡겼다. 덕분에 형준은 양초공장의 생산기술과 경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형준이 경영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상황은 더욱 나빠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최악의 불경기 한파가 몰아닥쳤다. 불운과 불행은 태풍이 몰고 오는 비와 바람 같아서 늘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불경기에 직면하면서 형준의 공장은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고 말았다.
부도는 예상했지만, 그렇게 빨리 도래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부채에 하루아침에 양초공장은 문을 닫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앞이 캄캄한 것은 사장만이 아니었다. 형준의 눈앞도 캄캄했다. 
어디든 취업이야 할 수 있겠지만, 형준의 사정은 달랐다.

양초... 양초를 보내야 한다.
양초가 안보내지면 그들은 얼마나 불안해할까.
삽시간에 암흑에 싸여버린 마을... 일시에 꿈이 닫힌 아이들...
악몽처럼 끔찍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다.
형준은 다시 예식장과 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예전 같지 않았다. 불경기는 어디든 마찬가지였다. 양초마저 버리는 양이 줄어든 것이었다.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형준은 빚쟁이에게 쫓기듯 불면증에 시달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악몽마저 꾸었다.
아이들이 눈에 빛을 잃고 울부짖는 꿈에 놀라 깨어나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소녀가 울고 있었다...
달력을 보니 내일이 기한이었다. 촛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형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홀린 듯 집을 뛰쳐나갔다.
양초 공장으로 달려갔다. 형준은 담장을 박쥐처럼 넘었다. 창고의 자물쇠를 열었다.
압류당해 쌓여 있는 양초더미가 창고 가득 들어 있었다. 롱가 마을이 몇 년은 켤 수 있는 양이었다. 30가구가 한 달 동안 켜고 살아야 할 양초.
그는 차근차근 양초 상자를 끄집어냈다.
숫자를 세면서 조용히 양초박스를 차에 싣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내일이 지나면 롱가 마을은 환하게 빛날 것이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을 것이다...

9.

형준이 한 달에 한번 밤중에 공장의 담장을 넘는 일은 그 후로 계속되었다.
그리고...,어느 그믐달 밤.
매복해있던 형사는 익숙하게 담을 넘는 형준을 능숙하게 잡았다.
형준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형준의 이야기는 SNS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매스컴에 보도된 형준의 일에 사람들은 동정심과 동시에 그런 일을 혼자서 해결하려했던 무모함에 의구심을 보였다. 여론은 갈리며 뜨겁게 달구어졌다. 

형준은 재판정에 섰다.
판사는 그윽하게 형준을 바라보았다.

“능력을 벗어나는 선행이라 해서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소?

“..........”

“영웅이 되고 싶었소? 신으로 추앙받고 싶었소?”

“...........”

“왜 그 일에 그렇게 집착했었소? 친지들이나 여러 사회단체에 호소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겠소?”

형준이 판사의 물음에 조용히 답하였다.

“그들은 빛이 시간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행복이고요. 그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습니다. 촛불을 보내다보면 그 소년 소녀중에 미래의 문명을 더 환히 밝히는 위인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개인으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자원봉사란...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누구라도 얼마간은 촛불을 보내겠지요. 주변의 관심이 없어졌을 때에도 꾸준히 보낼 수 있는 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자원봉사란...희생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판사는 형준에게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만,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쳤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선은 선이고, 악은 악입니다. 정상을 참작하였지만 유죄입니다.”

포승줄로 두 팔이 묶이면서 형준은 롱가 마을의 사람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나는 옥에 갇히지만 그들은 곧 암흑에 갇힐 것이다....

10.

오지 의료서비스를 하던 의사 친구가 형준의 소식과 편지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친구...
여러 사정을 잘 알 것이네.. 다만 슬픈 것은 롱가 마을 사람들이 곧 암흑 속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들이 이 소식을 알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네. 그들이 발에 입을 맞추던 신이 촛불 도적이었다니...
그들은 불빛을 훔치는 도적은 목을 잘라 장대에 걸어놓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나를 용서해 달라고 전해주게.

*추신: 양초를 어떻게든 구해 보내 줄 수는 없겠나?”

형준이 감옥에 갇힌 얼마 후. 
롱가 마을에 매달 그러했듯 커다란 상자가 도착했다.
양초와 학용품, 그림책이 들어있는 상자였다. 배달부는 촌장에게 촛불을 전하며 형준의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부탁받은 그의 할 일이기도 했다.
촌장은 그의 말을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배달부를 바라보았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촌장의 눈빛이 변하고 있었다. 동물의 무서운 눈매였다. 촌장은 매몰차게 양초상자를 돌려보냈다. 외지의 어떤 물건도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차갑게 말했다. 촛불을 기다리며 둘러서 있던 마을 사람들도 모두 싸늘하게 돌아서고 말았다. 아이들도 하나둘 사라져 없어지고 말았다.

한 달 후.
다시 누군가가 보낸 양초상자가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를 맞이하는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촌장도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의 불빛은 이내 꺼져 버렸다.   
친구로부터 이 소식을 듣자 형준은 마음속에서 한줄기 타오르던 가냘픈 촛불마저  꺼지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받아주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는다....
그 후의 그의 감옥생활은 암흑이었다.
목이 잘려 장대에 매달리는 꿈을 꾸며 그는 지옥 같은 나날을 감옥에서 보냈다.

11.

1년이 지났다. 형준의 형기가 마쳐졌다. 그러나 출옥 후의 희망이 없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감옥 밖도 감옥일 것만 같았다.
교도관은 형준의 재활을 위한 자료라며 출옥이 되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을 써내라고 했다. 교도관의 마지막 소원청취에 서슴없이 써냈던 곳.
롱가 마을이었다.

벌거벗고 창을 찌르며 식인 풍습이 있던 입가에 피를 닦아내며 날고기를 씹던 원시 부락.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촛불을 보내며 살았던 시기만큼 행복한 때는 없었다.
빛을 그리며 빛을 선물하던 시절...
행복은 빛이 비치는 ‘시간’이라는 촌장의 말...
그들에게 다시 촛불을 보내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들이 받아만 준다면...
그러나 그것은 꺼져버린 촛불처럼 캄캄한 희망일 뿐이었다.

감옥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형준은 문을 나섰다. 날은 이미 형준의 마음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감옥 앞의 광장에 발을 내딛었다. 딛고 싶지도, 머물고 싶지도 않은 현실과 앞날의 광장이었다. 그는 한참을 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앞은 더욱 어두워져 갔다. 이윽고 캄캄해진 광장을 더듬거리며 그는 그저 나아갔다.
어디로 갈 것인가?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그려지지 않았다. 촛불을 구해도 보낼 곳이 없었다. 생의 의미가 다 타버린 것만 같았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그때 형준의 앞으로 무엇인가 하늘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하나, 둘...
불빛이 켜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었다. 켜져 있는 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촛불이었다!
감옥 문 앞에 촛불을 들고 사람이 서 있었다!
오. 오. 그 소녀였다! 롱가 마을의 책을 읽던 그 소녀! 그 소녀가 서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녀만이 아니었다. 소녀 뒤에 오두막집에서 촛불을 가운데 켜고 모여 있던 소년소녀들이 모두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형준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비비며 다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소년소녀들만이 아니었다. 그들 뒤에 소녀의 아버지가 보이고 가족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롱가 마을 촌장의 얼굴이 보였다.
촌장의 뒤에 온 마을 사람이 다 모여 있었다. 손에 손마다 촛불을 들고서...
그들이 촛불을 흔들고 있었다. 수많은 반딧불이 떼가 나는 것처럼 촛불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시 눈을 들어보았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온 광장이 촛불이었다. 감옥 앞의 광장이 촛불로 가득 차 넘실거리고 있었다. 형준의 이야기를 듣고 모인 시민들이었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감옥 앞에 촛불을 들고 물결처럼 흔들고 있었다. 
형준이 광장에 나오자 일제히 환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풀라. 풀라. 풀라. 풀라...”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앞으로 달려 나왔다. 일제히 무릎을 꿇고 형준 앞에 엎드렸다. 촌장이 무릎을 꿇고는 형준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풀라풀라. 풀라풀라.”

“오. 신이시여...오. 신이시여...”

형준도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오, 하느님, 신이시여....”

하늘을 향해 형준도 중얼거렸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있는 형준을 중심으로 모여 촛불을 높이 쳐들고 계속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풀라풀라. 풀라풀라!”
“풀라풀라. 풀라풀라!”

12.

기적 같은 촛불 광장에 대한 형준의 궁금증은 얼마 후 풀렸다. 현준의 이야기가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흘러나가자, 형준이 출옥하는 날 촛불을 흔들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롱가 마을 사람들도 참여시키자는 제안이 나오자 그들이 한국에 갈 수 있도록 모금을 하자는 운동이 국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롱가 마을의 촌장도 앞장섰다고 했다.
신을 알현하러 간다....

세상은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운 곳이었다.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도 추한 사람도 있다.
세상이 얼마나 밝고 어두운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형준은 양초공장을 인수하였다. 모금액의 나머지로 인수한 것이었다.
이제는 제법 자란 롱가 마을의 아이들이 양초공장에서 형준을 위해 일을 하면서 공장은 운영이 재개되었다.  
아이들은 한글을 더욱 열심히 깨치고 있었다.
촌장은 롱가 마을의 어른 중에서도 원한다면 양초공장에서 일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오랫동안 멈추어 섰던 양초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롱가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양초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 하얗고 매끄러운 초 기둥에 불꽃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촛불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촛불이었다. 
심지의 중심에서 어둠속에서 빛을 그리던 아이들의 꿈으로 이루어 낸 촛불이었다. 

롱가 마을의 정부는 형준의 양초공장에서 생산되는 양초를 전량 수입하여 온 나라에 공급하기로 했다는 방침을 전해왔다.
형준은 전기와 기름이 없는 세계의 오지에 롱가 양초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양초와 함께 책과 학용품이 보내졌다.
‘롱가 양초’라는 브랜드가 생기고 그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었다.
‘롱가 양초’는 개발 도상국들의 발전과 문명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형준은 자원봉사자의 국제적 표상으로 범국가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형준이 세상에서 인류를 위해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광스런 상을 수상하던 날.
형준은 수상소감을 이렇게 수줍게 말했다고 한다.

“제 이름이 형준입니다. 반딧불 형(螢)자, 밝을 준(晙)자. 이 일을 하라고 부모님이 저를 낳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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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8 [16:09]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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