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 .일 화해를 위해 일본 노인회장께 告함
 
이순복   기사입력  2019/09/01 [18:58]
▲ 이순복 논설위원     ©

오늘날 세계 제 1의 노인복지사회를 원만하게 이끌어 가시는 일본 노인회장님께 한일 양국의 정치 현안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몇 자의 문자를 조합하여 드리기로 했습니다.


존경하는 회장님께서는 대한민국인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등살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도 그때 일본제국이 한국인에게 자행(恣行)했던 허다한 일들을 어른들로부터 듣고 또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으며 재일동포의 북송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진실로 심도(深度) 깊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북을 추종하는 재일동포와 남을 추종하는 재일동포로 나뉘어져서 적잖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진행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인의 한 사람으로 참담하고 부끄러운 심정을 제어(制御)하기 힘들며 그런 정황(情況)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의 앞날이 아직도 가시발길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보시기에도 한국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냉정하게 볼 때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을 것이며 동정이 가기도 할 것입니다.


춘추시대에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모든 사람을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갈파(喝破)하셨습니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라는 둘로 나누어 말하신 것입니다. 군자가 지도자나 덕이 있는 올곧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소인은 도량(度量)이 협소하고 덕이 모자란 사람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님은 설명하시기를 군자는 반드시 언어를 충성과 믿음으로 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으로 타인을 원망하지 않으며 어지름(인(仁))과 의리(義理)가 몸에 붙어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자랑하지 않는다. 또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이 이치에 통달(通達)하고 밝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행동을 독실(篤實)히 하고 도(道)를 믿어 스스로 강(强)하게 하기를 쉬지 않는다. 타인이 볼 적에는 누구나 그런 경지에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莫上) 행(行)하려고 하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니 이러한 사람을 군자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한국과 일본인의 군자가 가야할 길은 잘 지적해 준 말씀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노인회장님!


공자님의 이러한 격 높은 교훈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사이에 모든 비극과 갈등의 씨앗을 심는 것이 과연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죄송하지만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대동아를 경영(經營)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진주만을 공격하여 결국은 원자폭탄의 세례(洗禮)를 받고 두 손을 번쩍 들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그 ‘무조건 항복’이라는 회개(悔改)는 가식(假飾)이었습니다. 오늘날 까지 대한민국을 대하는 제국주의자 후예(後裔)들의 모습은 옛 영광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의 모습을 재현(再現)하며 목소리를 낮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직도 큰소리를 뻥 뻥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진정어린 사죄(謝罪)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일 사람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과오(過誤)를 진실로 반성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교가 될 때가 많습니다. 언젠가 일본 천황마저도 과거의 과오를 반성한다는 표현방법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단어 ‘통석(痛惜)’이라는 어법(語法)을 사용하여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통(痛)은 아프다는 뜻이지만 석(惜)은 아끼다. 라는 뜻이지요. 이를 연결 지어 이해해 보면 ‘아픔을 아끼다.’라는 말이 됩니다. 아픔을 어떻게 아낀다는 말인지요? 우리는 같은 한자문화권이니만큼 회장님께서는 일본천황의 대한민국인을 향해 발표한 속뜻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하여 별의 별 일본제국에 이로운 법을 만들어 고혈(膏血)을 짜내어가고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무지막지(無知莫知)하게 유린(蹂躪)했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전쟁에 항복은 일본이 했는데 일본국의 국민과 영토는 멀쩡하게 예전그대로 보존하게 되었고 애민(哀愍) 대한민국은 국토가 두 동강으로 허리가 잘라져 버렸습니다. 그런 연고(緣故)로 동포형제가 아귀다툼을 하게 조작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잘린 허리는 원상회복될 기미(幾微)조차도 보이지 않고 6. 25와 같은 참극(慘劇)이 언제 또다시 일어날지 앞날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전시상태가 진행형이며 아직도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불확실 시대가 병존(竝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일본제국이 대한민국인에게 준 참담(慘憺)한 결과물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불상사(不祥事)를 안겨주고 남의 집에 불구경으로 알고 즐기고 있는 것이 현재의 일본이요 아베정권임을 부인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회장님!


우리는 그래도 임진년부터 8년간 조선국을 초토화 했던 도요또미 히데요시를 위인(偉人)이라 말합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더욱 더 존경해서 그의 일생을 담은 책을 저는 두 번씩이나 읽었습니다. 가와바다 야사나리의 설국도 건강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우리는 이웃이니까. 그리고 따져 보면 피도 정서(情緖)도 거의 비슷한 부분이 많으니까. 서로가 입술과 치아(齒牙)의 관계이니까.


임진년 때 가도멸괵(假道滅虢)을 썼어도, 을사년에 늑약을 강행(强行)했어도, 경술년에 국치(國恥)를 당했어도 이것들은 흘러간 물이니까,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까,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고, 이해하고, 보둠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회장님께서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입술이 없어지면 당연히 치아가 시릴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155마일 휴전선을 막아주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해양국가(海洋國家)로써 당연한 듯 부귀영화를 누리고 삽니다. 그러나 자칫 현해탄이 이해가 상충(相衝)하여 전선(戰線)이 되어 버린다면 그때는 어찌 하시렵니까? 사실 일본의 부귀영화의 일부는 아니, 일본국의 부국강병은 대한민국이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대륙세력을 막아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말에 동의치 않는다면 회장님께서는 이 글을 여기서 더 읽지 마시고 그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공명(共鳴)하신다면 다음 이야기에 방점(傍點)을 찍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일본국 노인회장님!


현하(現下) 잘못되어지는 한일 갈등을 우리 노인들이 나서서 풀어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이 문제의 해법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두 나라간의 자존심 싸움이 그 발단(發端)이기에 그렇습니다. 자존심(自尊心)이란 알고 보면 혈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의 소유물입니다. 소용돌이치는 포말(泡沫)과도 같은 것입니다. 젊음이란 자기가 세운 의지를 관철(貫徹)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젊음의 표상이기도 한 혈기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늙은이는 다릅니다. 멀리 바라보고 또 멀리 생각하며 무겁게 행동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역사에 보면 노인들이 큰일들을 해결해 낸 경우가 많습니다. 인고(忍苦)의 노력을 기우려 난제(難題)를 푸는 것은 노인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태평양 같은 드넓은 가슴이, 그 인내심이 1지금도 가슴에 와서 닿습니다. 머리를 가득 채웁니다. 그분의 인고(忍苦)의 세월(歲月)이 대일본제국의 밑그림이 되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한.일간에 젊은 정치인들이 하는 기(氣)싸움을 우리 늙은이들이 대신하여 맡아 슬기롭게 해결해 본다면 그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은 불같이 끓어오르는 극도로 흥분된 모든 것들을 잠재우고 서로를 이해하는 화쟁(和諍)의 장(場)을 열려야 할 때입니다. 일찍이 원효(元曉)스님이 일본에 전해 드린 것이 바로 이 화쟁의 정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화쟁의 쟁(諍)은 간(諫)할 쟁입니다. 내가 잘 났다. 네가 똑똑하다가 아니라 ‘선생님 이것을 이렇게 하시면 어떻습니까?’ 라고 충언(忠言)을 드리면서 토론하고 회의(會議)를 진행하는 것이 화쟁입니다.


이제 필자는 늙은이의 진심을 성근 대바구니에 담아 대일본국 노인 회장님께 화쟁을 신청합니다.


가. 일본이나 대한민국에서 주장하는 바가 서로 각을 세울 만큼 중대하거나 시급성이 없음을 양해하자.


나. 가항의 주장은 쌍방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으나 국가를 경영하는 방식에서는 어설픈 바가 적지 않다.


다. 한.일간의 갈등은 속히 봉합되지 않으면 순망치한(脣亡齒寒)을 당하기 쉬운 난국(亂局)임을 직시하자.


라. 양국이 경제적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살면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적성국이 가져간다.


마.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지만 현해탄이 전선이 되면 당장 군비 확충을 양국은 서둘러야 한다.


바. 성난 쥐를 쫓으면 고양이를 문다. 대한민국의 대륙세력화를 촉진해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에 충실하자.


경애하는 노인회장님!


이제 이러한 의견을 말씀드리고 대책을 피력(披瀝)하고자 합니다. 위의 내용들이 공명(共鳴)이 되신다면 대책은 간명(簡明)하고 간단(簡單)하고 명료(明瞭)해야 합니다.


그래서 진언(眞言) 드리고 싶은 바는 한. 일 두 정부나 정치인 모두를 배제(排除)하고 두 나라 노인회가 주간(主幹)이 되어서 당장 발 벗고 나자는 것입니다. 그 근본 바탕이 되는 정신은 물론 화쟁 이라야 할 것입니다. 이 화쟁정신을 통해서 셋별과도 같은 의견이 도출(導出)되면 모금운동을 전개해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있지만 이 사태를 진정시키자는 것입니다. 그 진정 방식은 전쟁의 희생자요, 생이 얼마 남지도 않은 피해자들에게 위로(慰勞)의 금(金)을 노인회가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주어서 이 사건을 무난하게 마무리 짓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늙은이들이 두 나라를 위해서 나선 것이니 난해(難解)한 언어의 선택이나 법률적인 어떠한 간여(干與)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에 충실하자는 의견을 곁들여 제의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현 시국을 큰 틀에서 바라보면 미국이 중재(仲裁)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일 갈등에 미국이 관여(關與)하게 되면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수용할 정도의 해법을 한국 정부가 내놔야 할 것입니다. 가령 징용 피해자 보상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감당하고,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형식의 발상(發想)이 되겠지요. 그리되면 또 다른 불씨가 되살아나 양국간의 기 싸움은 다시 되풀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문제에서 만큼은 미국을 완전히 배제하고 모든 평가는 역사에 맡길 필요가 있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노인사회가 모두 합력(合力)하여 화쟁의 정신으로 실마리를 풀어낸다면 썩 보기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관여아래 양자가 구구한 이론을 다시 내세워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된다면 다람쥐가 채 바퀴를 도는 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고로 양국의 노인회가 한 마음이 되어 미증유(未曾有)의 이 사태를 쌍방 간에 덮어 버리고 잘잘못을 다 역사라는 큰 틀에 맡겨버리자는 것을 제의(提議)하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거듭 말씀드렸지만 생살을 찢는 심정으로 두 나라의 안전보장과 호해행복을 위해 호소 드린 이 화쟁정신을 앞세운 모금운동이 양국의 큰 호응을 얻어서 화해의 장이 조속히 열리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소망하기는 저의 졸견(拙見)이 보다 더 폭넓은 의견으로 진화 발전되어 존경하는 일본국 노인회장님의 탁견(卓見)이 더해져서 대한민국 노인회장에게 전달되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9/09/01 [18:58]   ⓒ 대전타임즈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