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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우상(2)
 
동화작가   기사입력  2017/11/09 [19:35]


악인의 우상(2)

7.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삶'
 
선생님의 말은 이제까지 어른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묘한 감동이 왔다.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결국 공부하라는 말 아닌가.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싫어서 안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나름대로 '자유'를 얻기 위해 이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자유들. 얼마나 자유로운가··· 행복한가···
 
마약처럼 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나를 하늘같이 떠받들고, 따르는 졸개들··· 그 여자애들···
그들과의 끊을 수 없는 의리···끈끈한 관계···
스릴 넘치고, 영화 주인공같이 멋있고, 스타같이 폼나는 세계···
선생님도 어머니도 나를 모른다.   
 
"내가 지금부터 너를 유심히 관찰할 것이다. 
약속을 어기지 마라. 사내답게 지켜라···"
 
이상국 선생이 헤어지면서 남긴 이 말.
그러나 정작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어른들이라 생각했다. 
 
8.
 
'피는 못 속인다. 무사인 선배와 어쩌면 저렇게 판박인가. 
그 체격에 그 성격.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상반될 수 있을까? 
녀석은 악인이다··· 타고 난 놈이다··· 말로 될 놈이 아니다···'
 
혁수를 만나고 나서 이상국은 마음이 무거웠다. 
 
'체자레 롬브로조.'
공부는 별로였지만, 도서관에서 읽었던 이 이름만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범죄 심리학자이자 의사로서, 한때 형법계의 찰스 다윈이었다. 
그의 유명한 이론.
'생래적 범죄인' 과 '범죄징표설'.
 
롬브로조는 범죄인 중에는 생래적으로 타고난 범죄인이 있다고 했다. 운명적으로 범죄를 범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런 범죄인은 표시가 있다. 그는 생래적 범죄인의 골상과 신체 특징을 과학적, 실증적으로 분류해 발표하였다. 
롬브로조는 '문명이 결코 범죄를 없앨 수 없다'며 생래적 범죄인이 저지르는 범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범죄의 징표로 보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 했다. 감옥이었다. 
 
'징표'. 
혁수는 그 징표를 벌써 팔뚝에 나타내고 있었다. 
악인의 징표···
 
체자레 롬브로조의 학설은 현대에 와서는 완전히 부인되었다. 그런 생래적 범죄인이나 징표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국의 뇌리 속에서는 잊혀지지 않는다.
범죄인의 징표 윤혁수와 의인의 표상이었던 무사인 선배···
무엇인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무사인선배가 계셨더라면 아들 혁수를 어떻게 하셨을까?
 
9.
 
학교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여전히 말없는 우상으로, 겉에서 보이는 변화라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윤혁수는 점점 더 흑표범같이 밤의 거물로 커나가고 있었다.
 
빙산의 일각이었지만,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폭행이었다. 
경찰서에서 이상국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혁수는 다른 폭력배 두 놈을 잔인하게 짓이겨 놓고 유치장에 앉아 있었다. 
 
이상국은 조용히 대학 후배들을 불렀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고 기민하게 혁수의 일을 해결했다. 이상국이 소리없이 합의금을 지불하고 신원을 보증했다. 
윤혁수는 아무 일 없이 풀려 나왔다. 
 
며칠 후 이상국이 혁수를 체육관으로 불렀다. 긴 말을 하지는 않았다. 
 
"혁수. 우리 약속했다. 내가 아버지 같이 너를 보호하기로.
나는 너를 지켜준다. 그런데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구나. 
좋다. 용서하마. 다시는 그러지 마라. 
다시 약속하자. 나는 너의 아버지. 너는 세 가지 약속. 
꼭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기로···"
 
이상국은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이번에는 혁수도 진지하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약속 지키겠습니다."
 
적어도 유치장에서 구해준 의리는 지켜야 한다. 
윤혁수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켜주기로' 마음먹었다. 
졸업도 하고 볼 일이었다. 
그 후로 그는 결석하지 않았다. 왠만한 일은 혁수를 따라다니는 '셋째부류'들에게 시켰다. 조신하게 몸조심을 했다. 
그럴수록 혁수는 더 구름같은 신화요, 전설같은 우상으로 몸이 무거워졌다. 선생님들은 혁수가 조용히 있어 주는 것에 고마워했다. 
그는 '사내답게' 어머니와 선생님과의 약속을 이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 날, 윤혁수는 학교를 나오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교문 밖을 나오는데. 몇 녀석이 기웃거리며 몸을 숨기곤 하였다. 
악인들에게는 특유의 후각이 있다. 
몇 놈을 부를까하다 일이 커지면 곤란하다 싶어 묵묵히 길을 걸어갔다. 저녁은 어두웠고, 골목길에 접어들어 품속의 나이프를 꺼내들 찰나, 혁수는 기절하고 말았다. 후두부의 일격이었다. 몽둥이와 흉기로 짓밟히며 정신을 잃어갈 때 그는 그 중의 한 명에 기억을 집중했다. 
 
누군가의 신고로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그는 주소와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뒤처리는 빽 좋은 '셋째 부류'들이 해결했다. 
 
한동안 몸을 추스렸다. 혁수는 기억에 남았던 녀석을 기어이 찾아냈다. 녀석의 허리를 꺾고 담뱃불로 팔을 지질 때마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동료들 이름을 댔다. 
 
혁수가 다시 학교에 나갔을 때는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였다.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셋째 부류'들의 입소문으로 인해 윤혁수의 영웅담은 몇 배로 부풀려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퇴학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다. 
이상국 선생만이 직을 걸고 책임질테니, 퇴학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교장 선생님에게 읍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10.
 
등교하자마자, 윤혁수는 이상국 선생에게 불려갔다.
체육관이었다. 
이상국 선생은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의 손에 목검이 들려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혁수에게 선생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윤혁수. 너를 믿었다. 
남들이 애비없이 자란 놈이라 해도 너를 '사내'라고 믿었다.
그런데, 너는 아니었다. 어머니와 약속했고, 선생님하고도 약속해 놓고 약속을 깼다. 너는 비겁한 놈이다. 
비겁한 놈. 어머니가 불쌍하지도 않나? 아버지에게 부끄럽지도 않나? 이 불효막심한 놈. 네 인생이 그렇게 비참해져도 좋단 말이냐? 
이 못난 놈!
 
너는 무서운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오늘 무서운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선생님으로서 나는 너를 때릴 수 없다. 이 매는 아버지에게 맞는 매다. 
이놈. 오늘 내가 네 아버지로 훈도하겠다. 아버지라고 생각해라.
엎드려 뻗쳐!"
 
혁수는 말하고 싶었다. 
 
'아닙니다. '사내답게' 약속을 지키려 했습니다. 진정입니다. 
그런데 녀석들이 못 지키게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변명에 불과했다. 징징거리는 계집애 같은 말이었다. 
 
"엎드려 뻗쳐!"
 
그는 엎드렸다. 
선생님의 목검이 엉덩이를 내리쳤다. 
 
"우악!"
 
혁수의 입에서 비명이 절로 나왔다. 여느 몽둥이와는 달랐다. 
목검이 그렇게 아플 줄 몰랐다. 검도 5단···
그러나 엉덩이가 아픈 것보다 '사내답지' 못한 비겁한 놈이 되어 매를 맞는 것이 더 아팠다. 
 
"선생님, 약속 지키려 했습니다. 저 지키려 했어요."
 
그가 맞으면서 외쳤지만, 선생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믿어주지 않았다. 
 
"거짓말··· 비겁한 놈···"
 
사정없이 매가 꽂혔다. 온 몸이 우리우리 떨리며 아팠다. 
 
"아닙니다. 아니예요."
 
선생님은 매를 멈추지 않았다.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악인의 피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이를 부드득 갈았다. 
혁수가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엎드려 뻗쳐! 이놈!"
 
혁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흠칫했다. 
혁수가 바지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아니, 이 녀석이···"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한 걸음 주춤 물러섰다. 
그때였다. 윤혁수는 꺼내든 나이프로 전광석화같이 자신의 팔등을 그어 버렸다. 
팔뚝의 살이 날카롭게 베이며 속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그는 이상국 선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외쳤다.
 
"저 '사내답게' 약속 지키려 했습니다. 이래도 못 믿으시겠어요?!"
 
팔에서 붉은 선혈이 분수같이 솟아올랐다. 흐르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피였다. 팔꿈치에서 팔목까지 예리하게 베어진 틈에서 피가 폭포같이 흘렀다. 
피가 흐르는 팔뚝을 들어 보이며 혁수가 선생님을 노려봤다. 
 
"저, 약속 지켰습니다."
 
이상국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이상국은, 
 
"이런 불효막심한 놈. 불효막심한 놈···"
 
하며 허둥지둥 혁수를 들쳐업고 입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체육관 문밖에 있던 학생들이 놀라 모두 길을 비켜섰다.
윤혁수는 선생에게 업힌 채 그들에게 손을 들어 여유있게 흔들었다. 
 
"나의 전설은 이 학교가 있는 한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사내답게' 산 영웅으로··· 
아우들아, 보라. 내가 곧 부활할테니···" 
 
11.
 
윤혁수는 즉시 퇴학당하였다. 
이상국 선생은 해임되었다. 
 
학교 담장을 벗어나는 것은, 거추장스런 규율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방된 자연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학교라는 것이 그렇게 큰 성이고, 선생님이 그렇게 거대한 보안관인줄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사회는 얼음같이 냉혹하고, 사막같이 삭막했다.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파출소 순경이 손가락 하나로 수갑을 채우는가 하면, 그들의 펜 놀림하나로 하루하루가 결정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죄도 아니고 그저 선생님에게 반성문이나 쓰면 될 대수롭지 않았던 일,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고 영웅적으로 해냈던 일들이 사회에 나오니 하나씩 들춰내져, 컴퓨터에 입건되면서 어마어마한 범죄로 둔갑하였다. 
 
폭행, 상해, 강도, 성폭행···.
 
선생님을 통하지 않고는 감히 학교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던 형사들이 낮이나 밤이나 혁수의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과 집을 제 집 안방 드나들 듯 했다. 
 
어머니는 손발이 다 오그라졌다. 
경찰서다, 변호사다, 검찰이다, 법원이다, 구치소다 하면서 식당 일을 그만 두고 다리가 부서져라 돌아다녔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돈이 들었다. 
변호사비야, 합의금이야, 인지대야, 뭐야, 뭐야···
전세도 내놓고, 예금도 다 털었다.
은행 대출은 말할 것도 없고, 빚도 얻어야 했다. 집안이 거덜났다.
어머니는 소년교도소만은 피해야 한다며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황태자였던 그, 전설의 영웅, 그들의 우상이었던 윤혁수···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한없이 망가지고, 몰골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눈매와 주먹에 힘이 다 빠졌다.
하루아침에 천지가 이렇게 개벽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갑 찬 손으로, 책상 넘어 안경 끼고 펜을 놀리고 있는 저 범생이, 찌질이 같은 녀석들에게 한없이 굽실거려야 했다. 비참했다. 무력했다. 
 
12.   
 
없는 돈과 어머니의 뼛골 빠지는 노력 덕분에 윤혁수는 소년원에 보호처분 되었다. 
 
그곳은 교도소가 아니라 19세 미만의 비행 소년들을 위한 학교였다. 근무하는 사람들은 교사 자격증이 있는 선생님들이었고, 과목별로 수업이 있었으며 검정고시 준비반이 있었다.
 
소년원에서의 생활.
윤혁수가 인생에서 다시는 회상하고 싶지 않은 시간, 바로 이 때였다. 길게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불이 켜진 채로 잠들어야 하고, 화장실까지 24시간 CCTV로 감시당하며, 운동과 수면시간 외에는 드러눕지도 못한다든가, 초등학교 5학년 짜리와 19살 고등학생이 같은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 같은 신체적 구속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혁수는 이상국 선생님의 말이 주마등같이 떠올랐다.
 
'자유'와 '행복'은 같은 단어라는 것을 아나?'
 
'자유'.
나이도 인격도 무시되고 오로지 범죄의 질과 양에 의해 인간의 서열이 매겨지고, 악독하고 변태적인 사람들의 일원이 되어 스스로를 끼워 맞추어야 하는 인격말살의 처참함에 '자유'는 호사스런 단어였다. 
'자유'.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러나 그 '자유'는 없어졌다. '행복'도 사라졌다. 
무서운 것은, 소년원을 나가도 보이지 않게 옭아매는 그 무엇이 있어 이 '자유'가 인생이 끝날 때까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가슴 속에 찬서리가 내리는 듯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소년원이 그럴진대, 어머니가 왜 소년 교도소는 절대 안 된다며 몸부림쳤는지 이해가 갔다. 
그곳은 의리 있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도 아니요, 악인들이 한번쯤 거쳐야 하는 골든 벨 무대도 아니었다.
윤혁수의 눈에는 그저 이 사회의 더러운 쓰레기 하치장 이었고, '자유'의 단두대였다. 
 
소년원 생활을 하면서 윤혁수에게 악인을 보는 눈이 생겼다.
 
'첫째 부류'의 악인, '둘째 부류'의 악인, '셋째 부류'의 악인···
 
그의 눈으로 볼 때, 원생들의 대부분은 '셋째 부류'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학교 다니다 들어 온 폭력배 중에는 자신보다 약하고 소외된 학생들을 골라 폭행한 비겁하고도 야비한 철없는 녀석들이 많았다. 악인 흉내내다 걸려 들어온 것이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고 건방피우다 온 어리석고 못난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그 댓가는 너무나 컸다. 
 
혁수의 '첫째 부류'로서의 악인의 속성은 소년원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허리우드 액션도 필요 없었다. 그의 화려한 '무용담'과 '사내다운' 기질 앞에서 점차 '까부는 놈'과 '건방진 놈'이 사라져 갔다. 
선생님들이 원생들을 통제할 때, 혁수를 찾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짱'이 되어 가고 있었다.
 
13.
 
소년원 직원중에 혁수를 눈여겨보며 알 수 없는 신뢰감을 보여주는 선생이 한 사람 있었다. 
김영옥 선생.
운동으로 다져진 몸에 훤칠한 키의 그는 윤혁수를 가슴에 부착한 번호로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러 주었다.
 
"윤혁수! 사무실로···"
 
사무실 테이블 위에 사탕과 과자가 놓여 있었다.
김영옥이 윤혁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간단하고도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중학교 선배였다.
영옥은 혁수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따뜻하게 배려해 주었다. 덕분에 혁수의 소년원 생활은 지내기가 한결 수월하였다. 
고마운 일이었다. 
하루는 김영옥이 은근히 혁수를 불러 간식을 주며 물었다. 
 
"그때 같으면.., 이상국 선생이라고 알겠네···
지금도 거기 계신가?"
 
혁수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머뭇거리다가,
 
"그만 두셨습니다."
 
"왜?"
 
"폭력교사라서요."
 
"폭력교사? 왜? 그럴 분이 아닌데···"
 
혁수가 영옥을 바라보며 직선으로 말했다. 
 
"제가 잘랐습니다. 학생을 사랑으로 계도하는 것이 아니고, 개 패듯 패고, 학생의 말을 못 믿고 자기가 무슨 학부형이라도 된 듯 아버지라며 폭력을 휘두르다가 잘렸습니다."
 
김영옥의 두 눈에 비상등이 켜진 듯 했다. 
 
"자세히 말해봐. 어떻게 했다고?"
 
윤혁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 놓았다. 그리고 왼팔을 보여주었다. 팔꿈치부터 팔목까지 길고 깊게 베어진 상처가 흉측하게 남아 있었다. 
혁수의 뱃속에서 당시의 영웅심이 다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김영옥은 윤혁수의 말을 눈도 깜박이지 않고 듣고 난 후,
 
"그게 사실이란 말이지. 이상국선생이 그만 두신 게 너 때문이라는 말이지···"
 
하더니, 갑자기 벽력같이 혁수를 향해 소리쳤다.
 
"이런 나쁜 자식! 이런 자식을 후배라고···"
 
뺨을 부들부들 떨며 영옥은 흥분하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갑자기 돌변한 김영옥의 태도에 혁수 또한 말을 잃고 있자, 김영옥이 윤혁수에게 칼로 베듯 소리쳤다.
 
"너 따라와!"
 
혁수는 영문도 모른 채 납작 엎드린 자세로 김영옥을 따라갔다. 
김영옥이 혁수를 데리고 간 곳은 체육관이었다. 
 
"엎드려 뻗쳐!"
 
영옥이 명령했다. 즉각 엎드렸다. 
김영옥은 캐비넷에서 목검을 꺼내왔다. 
 
'목검!'
 
이상국 선생의 목검이 떠올랐다. 악몽같은 트라우마였다. 
마음의 각오를 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김영옥은 사정없이 목검을 내리쳤다. 
이상국 선생의 매는 매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김영옥 선생의 매에는 증오가 있었다.
엉덩이 살이 찢어지고 터져 피가 튄 뒤에야 김영옥은 매를 멈추었다. 
윤혁수는 의무실에 입원하였다. 
소년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듯 했다. 
 
혁수가 누워있는 의무실에 김영옥이 찾아왔다. 
그는 차디찬 어조로,
 
"118번 윤혁수. 어서 나아라. 
나아야 또 맞지. 너는 죽을 때까지 맞아야 해. 
너는 맞아 죽어야 해. 알았어!"
 
이렇게 말하고 의무실 문을 꽝 닫고 나가버렸다.
윤혁수는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김영옥의 말과 눈이 두려웠다. 더욱이 이유가 무엇인지, 그 알 수 없는 적개심이 더욱 두려웠다. 
 
윤혁수가 의무실에서 퇴실하자, 김영옥이 여지없이 혁수를 불렀다. 
체육관이었다. 
김영옥은 이번에는 검도복으로 갈아입고 목검을 허리에 차고 장승같이 서서 혁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려움이 무서움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렇게 무서워 본 적은 없었다. 
 
"엎드려 뻗쳐!"
 
저승사자처럼 서 있던 김영옥이 차디차게 내뱉었다. 
윤혁수는 그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맞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맞겠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말해주십시오"
 
"이유? 그래 좋다, 이유는 알고 죽어야지."
 
김영옥은 무릎 꿇고 있는 혁수의 머리 위에 목검을 거누며,
 
"네가 죽어야 할 이유를 말해주마."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체육대학 다닐 때,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님이 계셨다.
별명이 '무사인' 선배였다. 너 같이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은 쳐다도  볼 수 없는 사나이중의 사나이였다. 그 분은 늘 후배들에게 말했다.
 
'사내답지 살지 않으려면 죽어 버리라'고···
 
그분은 사내답게 산다는 것을 이렇게 말했다.
 
첫째, 나보다 동포를 먼저 생각하라. 제 가족을 생각하는 것은 여자가  할 일이고, 더 큰 가족, 동포를 생각하는 것은 사내가 할 일이다. 
둘째, 의가 아니면 쳐다보지 마라. 제 목숨 아깝지 않고, 돈 싫고, 명예가 싫은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러나 사내라면 의를 위해 죽고 살아야 한다.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선생같은 사내가 진짜 사내다. 
셋째, 미래를 향해 살아라. 밝고 넓은 미래의 세상에서 살아라. 어리석게 과거와 현재에 미래가 묶여 어두운 세상에서 살지 마라. 
 
그리고 그 분은 그렇게 사셨다. 우리 검도부는 그 분을 진정으로 존경했다. 우리의 사표로 모셨다. 그런데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다. 
우리는 그 분 장례식장에서 맹세했다. 
사내답게 살자고···
우리는 무사인 후계자를 만들었다.
그 분이 초대 무사인. 그리고 4대가 이상국 선생님. 
내가 10대 무사인이다.
그 중 몇 분은 무사인선배님의 유지를 받들어 국가와 미래를 생각하며, 검도로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다음 세대를 올바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4대 무사인. 이상국 선생님.
그런데 너를 아버지처럼 훈도하신 이상국 선생님을 폭력교사?
네가 잘라? 
너는 네 후배들의 올바른 삶을 가르치려는 교육의 뿌리를 잘랐다. 
너 같은 쓰레기는 없어져도 좋아. 그런데 네 후배들의 새싹까지 잘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무사인의 이름으로··· 
엎드려 뻗쳐!"
 
윤혁수는 고개를 들어 김영옥을 바라보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그런지도 모르고··· 
그 매로 저를 죽여주십시오."
 
윤혁수는 조용히 엎드렸다. 매를 기다렸다. 
매는 내려쳐지지 않았다. 
김영옥은 목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체육관을 나갔다. 
윤혁수는 체육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떨어지는 눈물이 시냇물같이 흉터가 있는 팔등을 타고 흘렀다. 


14.
 
검도 사범으로 후진을 가르치며 소일하고 있던 이상국에게 오래간만에 전화가 왔다. 친동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 김영옥이었다. 
안부차 전화라 하면서도, 선배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묻는 말이 지나가는 인사가 아니었다. 
 
"오, 오래간만이네. 요즘 학교 명퇴하고 잘 지내고 있어."
 
"명퇴요? 왜 명퇴를 하셨지요?"
 
"그만 할 때도 됐잖아···"
 
막무가내로 식사하자는 김영옥의 말에 둘은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화제에 자연히 윤혁수가 떠올랐다. 이상국이 깜짝 놀라 물었다.
 
"윤혁수가 자네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다고?"
 
"그렇습니다. 그 녀석이 선배님을 잘랐다고 망발을 하길래, 제가 훈도 좀 했습니다."
 
이상국이 김영옥을 바라보았다. 엄숙하도록 진지했다. 
 
"윤혁수가 무사인선배 아들이라는 거 아나?" 
 
김영옥은 눈이 뒤집히듯 놀랐다.
 
"예에?!"
 
"혁수 본인도 모르고 있다. 나도 형수님 만나 뵙고 알았다." 
 
"아니 어떻게?"
 
"형수님도 아들에게 말을 안했대··· 
약간의 미스테리가 있는데, 무사인선배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는구먼···"
 
"······.."
 
"형수님 말씀이, 해병대 수색장교로 입대했던 선배님이 휴가 나왔다가 폭력배들 하고 붙었다는구먼··· 
자네도 선배님 성격 알잖아. 약혼한 형수님하고 술집에서 데이트하고 있었는데 폭력배들이 술집 아가씨들을 희롱했다는구먼. 
선배님이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니까, 녀석들이 형수님까지 희롱했다는구먼. 참고 있을 분이 아니지··· 
술집이 뒤집어지고 녀석들 크게 당했는데, 선배님도 넘어지면서 뇌진탕으로 그리 됐다는 거야··· 
군 장교로서 좋은 일도 아니고 해서 서로 교통사고로 합의했다는구먼. 그러니 대놓고 말을 못하지. 전사라고만 하고···" 
 
"그게 그렇게···.
그런데 아들은 학교 폭력배란 말입니까?"
 
"그래서 내가 사람 좀 만들려고 했지. 무사인선배님 생각해서···"
 
"어떻게 무사인선배님 같은 분에게서 저런 아들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교육이야. 교육···
무사인선배님이 그랬잖아. 자식 교육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모 있느냐고. 그래서 선생님이 존경받아야 한다고. 사도가 떨어진 교육풍토에 일갈하면서 말이지. 그 말에 감동받아 나도 선생이 됐었지. 
혁수한테는 정말 아버지 노릇 좀 해보려고 했는데··· 
그리 됐네."
 
그러면서, 
 
"혁수 만기가 얼마나 남았지?"
 
"1년입니다."
 
이상국이 정색을 했다. 그리고 간곡하게, 
 
"자네가 사람 좀 만들게···
녀석 저렇게 망가지면 우리가 어떻게 무사인선배 얼굴을 보겠나?"
 
15.
 
김영옥이 윤혁수를 다시 불렀다. 
체육관이었다. 
목검을 들고 있었다. 윤혁수는 부들부들 몸이 떨려왔다. 
김영옥은 근엄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18번, 윤혁수. 너 전번에 죽여 달라고 했지. 
좋아. 오늘 죽여준다. 깨끗하게 죽을 수 있나? 사내답게!
너는 오늘 죽을 거다. 쓰레기 윤혁수는 죽는다. 
어머니에게 불효하고, 아버지 같은 선생님 망가뜨리고, 주먹이나 쓰는 학교 폭력배, 사회의 암 덩어리 너 윤혁수는 죽는다. 깨끗이 죽는다.
알겠나!
그 대신 새로운 윤혁수가 된다. 그게 너를 죽여주는 조건이다. 
약속할 수 있나?"
 
윤혁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새로운 윤혁수란··· 어떤?"
 
김영옥이 말했다. 
 
"선생님이 돼라. 너 선생님이 돼서, 이상국 선생님 같은 훌륭한 분의 뜻을 이어라. 그 분에게 속죄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선생님이 되는 거다. 네 아버지의 꿈을 네가 이루어내는 것이다. 
알겠나?"
 
'아버지의 꿈?'
 
"엎드려 뻗쳐!"
 
그는 목검으로 혁수의 엉덩이를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다. 
 
"이것은 이상국 선생님이 너에게 내리는 사랑의 매다. 
죽어라. 윤혁수!"
 
그리고 두 번째 매를 내리치면서,
 
"이것은 네 아버지 무사인선배님의 매다. 네 아버지가 하늘에서 아들에게 내리는 사랑의 매다. 죽어라. 윤혁수!"
 
그 다음은,
 
"이것은 불쌍한 네 어머니가 울면서 너에게 내리는 사랑의 매다. 
죽어라. 윤혁수!" 
 
세 번째 매가 가장 아팠다.
 
16.
 
무사인선배가 바로 네 아버지였다!
 
김영옥은 혁수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윤혁수는 엎드려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의 두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체육관 매트를 흥건히 적셨다. 
윤혁수가 흐느끼며 말했다. 피 끓는 참회의 절규였다. 
 
"선배님. 윤혁수를 죽여 주십시오.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상국 선생님, 아버지, 어머니! 
전 정말 죽일 놈입니다. 절 죽여 주십시오. 윤혁수를 죽여 주십시오!"
 
17.
 
윤혁수는 죽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무사인 2세가 되었다. 
그는 선생님이 되었다. 체육교사가 되었다.
30여년간 작은 교실의 교단에 서서 봉직하면서, 그는 수많은 첫째, 둘째, 셋째 부류의 악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반복하여 교실 안의 그 자리를 비우면 채우고, 채우면 비웠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윤혁수는 알고 있다. 
역사의 무엇이 반복되어야 하고 무엇이 예외이어야 하는지를.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삶'. 
이상국 선생이 말한 '자유로운 삶'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만이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무사인 아버지의 교육관도, 사랑의 매도, 무엇이 '자유'인지도 역사의 흐름을 타고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확신하고 있다. 
그의 학생시절의 경험으로 미루어..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하여도.. 
'악인은 없다'라는 걸..
 
얼마 전 돌아가신 이상국 선생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면서..
 
"나는 체자레 롬브로조가 왜 틀렸는지 이제야 깨달았네.
정말 유전적으로 생래적 범죄인이 있는지는 모르겠네. 


DA 300

 

헌데, 그는 법과 교도소만 아는 학자였어. 법과 교도소로 볼 때 그의 이론은 맞았네. 
하지만 선생님을 몰랐어. 그의 오류는 학교를 모르고 선생님을 몰랐다는 것이었네. 선생님 때문에 롬브로조는 틀렸네. 
생래적 범죄인. 그런 것은 없다네. 훌륭한 선생님 앞에서···"
 
 
* 이 가족동화를 생을 다 바쳐 이 땅의 철없는 것들을 가르치며 애쓰시는 선생님들과 퇴직하신 은사님들께 바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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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09 [19:35]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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