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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5 화 불타는 애국애족(2)
 
이순복   기사입력  2017/07/07 [14:15]

 입 달린 사람마다 자기 주장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것이 도깨비든 반디불이이든 기적 같은 일임에 분명했다. 도깨비 불 소동이 있고 보름이 지나서다.
 “이보게, 이것 좀 보소!”
 “웬 일이여!”
 천수가 둔탁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본동에게로 갔다. 스물 사흘 조금이라서 바다 물은 방축의 발등상을 겨우 적시고 있었다. 그 곳에서 뱀장어 한 마리와 드럭이 몇 마리를 잡아든 본동이 방축 돌 틈 사이를 지긋이 드려다며 말했다.
 “집사님! 이것 좀 봐요. 이것, 이것이 기적이란 것이요 기적.”
 “이 사람아! 뭘 가지고 그래. 용이라도 한 마리 잡았어.”
 무심코 하는 말이었다.
 “용이 아니라. 꿀 방축을 만들었소.”
 “꿀 방축이라니... 무슨 소리랑가?”
 천수집사는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아무튼지간에 와서 봐요. 보면 알 것이요.”
 본동이 가리키는 곳을 천수집사는 눈여겨보았다.
 “꿀이 붙었어. 웬 꿀이 그리도 많이 붙었을까?”
 “여그 뿐만 아니요. 갱물에 젖은 돌은 다 하얗게 꿀 새끼가 붙어 불었소.”
 본동은 탄성을 질렀다.
 “참말이 제. 이것이 웬 조화 속 이랑가. 참말로 요상 시룹구만, 요상 시루와.”
 무심결에 그렇게 천수집사는 말했으나, 송영감을 닮아 지혜가 남다른 본동은
 “집사님 인자는 이 방축이 끄떡도 없을 것이요. 해일이 아니라 해일 할애비가 와도 끄떡도 없을 것이요.”
 “글세나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들은 이런 대화를 하고 방축을 떠났으나, 방축에 한 번 붙은 석화 씨는 날마다 달마다 자라나서 돌과 돌 틈새를 꼭꼭 엮어주며 굵은 굴이 자라게 되었다. 훗날 이런 일을 회자하여 이곳 방축 이름을 명명하기를 굴개방축이라 했고, 지금도 이곳을 굴개들이라 했다.
 도깨비는 있을까? 도깨비는 메밀 죽이나 메밀묵을 좋아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 보다 이 방축이름이 굴개 방축이며 한 번 굴이 이렇게 붙은 후로 오늘날까지도 튼튼한 방축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공사를 완공하고 작답이 시작되었다. 농부들은 꿈에 부풀었다. 고공도 안정을 찾고 있었다. 중추원 참의인, 고공을 황국신민,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본보기라했다. 굴개방축의 성공으로 천황폐하의 은혜가 내려졌다. 용부의 형량도 축소됐다. 10년 징역을 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돈의 효과가 나타나서 형량이 예상외로 가벼워 졌다. 돈의 효과는 그런 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용부의 고통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은전의 대가로 학병들의 틈새에 끼어서 성전(聖戰)에 참가하라는 명령이었다. 여기서 성전이라 함은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던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구호이다.
 용부는 할아버지 고좌수의 제삿날을 이레 앞두고 고향산천을 뒤로했다.
 “용부야! 몸조심해라! 전장터란 징역살이 보다 더 험할 것인디. 어쩔 것인고...”
 송씨부인은 예전 같지 않고 마음이 몹시 약해져 있었다.
 “어머니! 너무 걱정 말아요. 사나이라면 전장터에도 나가는 것이니...”
 “어쩌던지, 늬 몸 하나 건사해서 돌아와야 한다.”
 송씨부인은 아들 앞에서는 눈물은 터뜨리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통곡을 하고 있었다. 이들 모자가 하는 수작을 지켜보던 고공이 용부를 따로 불렀다.
 “용부야! 이걸 잘 간수해라.”
 고공은 물기어린 눈동자를 조심스럽게 굴리면서 돈을 건넸다.
 “아버지, 이렇게 많은 돈은 필요치 않는데요.”
 용부는 고공을 우러르며 말했다.
 “용부야! 듣자니 학병이 상당수 도망을 쳤다는 정보다. 하긴 쪽발이 놈들 싸움에 조선 사람이 왜 부화뇌동하겠느냐. 집안 걱정은 하지 말고,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 몸을 지켜야 한다. 너의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너는 다소나마 짐작할거다. 그럼 가거라!”
 고공은 터놓고 도망병이 되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런 뜻으로 말했다.
 “예, 아버지! 제가 어디 어린인가요. 걱정 말아요. 잘 다녀올께요.”
 용부는 사나이답게 말하고 떠났던 것이다. 숙부 호성이도, 마을 사람들도, 무운장구를 빌면서 환송했다.
 “잘 있어요.”
 “잘 다녀와.”
 만남과 기쁨은 잠시 잠간이요 헤어짐의 슬픔은 가슴에 멍을 남기는 것이었다.
 용부를 보내고 고공 집안은 한동안 제사준비로 바빴다. 초상 시에는 비명횡사를 한 까닭에 쉬쉬하면서 장례를 치렀으나, 금년 대상은 달랐다. 비록 재물은 가을바람에 낙엽 흩어지듯 흩어지고 눈에 띠게 기울었으나, 거창한 손님맞이를 준비했다. 소를 잡고, 돼지를 잡고, 갖가지 음식을 작만 했다. 고공집은 물론이요, 온 마을이 시끌벅적 했다. 특이나 굴개들에 작답을 할 농부들은 미리 찾아와 눈도장을 찍기 위해 열을 올렸다. 일이 이리 되니 농장감독으로 임명된 경리부장과 천수집사는 몸이 열이라도 부족했다. 본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런가 하면 송영감을 위시한 노인들은 사랑채에 앉아서 고공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이리되니 자연히 최익손에 대한 험담도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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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07 [14:15]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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