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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7 화) 장강은 유유히 흐르고(3)
 
이순복   기사입력  2016/09/20 [10:43]

 한편 형양성을 공격하던 석호는 더욱 치열한 공격을 감행하여 마침내 성곽 일부를 허무는데 성공하였다. 형양성의 수장 양서는 유요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구원하러 온다는 보고를 받고 힘들여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특히 오래 동안 굶주리며 싸우다 보니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백성과 군사가 모두 기아에 지치다보니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산다는 것이 싫증이 날 지경이 되었다. 그런 성안의 군사와 백성들에게 비보가 날라 들었다. 그것은 유요의 가슴 아픈 패전 소식이었다. 이제는 앉아서 굶어 죽느니 보다 성 밖으로 치고 나가서 유요군과 합세하여 싸우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달리 도리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야심한 밤중에 성문을 열고 빠져 나갔는데 양서가 이끈 성안군사는 5 리도 채 가지 못하고 석호군에게 발각되어 대부분 창칼을 맞아 죽었다. 다만 양서와 졸병 몇이 살아서 유요의 진영으로 도망하였지만 그날 밤 형양성은 석호의 수중에 들어가 버렸다. 전세가 이처럼 불리해 지자 유요는 수하막료들을 모아 놓고 숙의하자 장군 유아가 나서서 아뢰기를
 “형세가 이같이 험하게 된 바에야 차라리 얼른 장안으로 회군해서 굳게 지키는 것이 상책인가 하옵니다.”
 유요도 그 말을 옳게 여기고 그 날로 영채를 뽑고 후퇴령을 내려서 평선과 양백우는 뒤쳐져서 추격해 오는 석늑군을 끊게 했다. 이 소식은 그날 밤 탐색병에 의해 석늑에게 보고되어 곧 석호에게 5만군을 주어 지름길로 앞질러서 관에 나가 유요의 퇴로를 차단하게 했다. 그리고 석늑 자신은 틈을 주지 않고 바짝 유요 군의 뒤를 추격했다. 꼬박 1주야의 맹추격을 당한 유요는 패잔병을 수습하여 호곡관에 당도했다. 경계를 벗어날 때 석늑군에게 발각될까봐 대부분 양초를 버리고 떠나온 유요의 군사들은 관 밑에 당도하자 몹시 허기가 졌다. 중화 때가 지났으나 관 주변은 보인 것이 산뿐이라 먹을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군졸들은 배낭 밑을 들여다보며 허탈감에 빠져 버렸다. 유요군은 굶주려 새우등을 하고 이를 갈았다. 그런데 이미 지름길을 강행군한 석호가 5만군으로 관 주변을 촘촘히 매복군으로 채워둔 줄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밤이 들자 피로에 지친 유요군이 잠이 들어 녹아 떨어졌을 때 석호는 유요군의 영채에 일제히 화전을 쏘면서 야습을 감행했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유요는 군사를 독려하여 관을 넘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석호군이 유요군 영채 주위를 빈틈없이 포위해 버린 후였다. 전후좌우가 모두 석호군이었다. 밑에도 불 옆에도 불이 붙고 있었다. 불길과 적이 일시에 밀려드는 바람에 얼이 빠져버린 유요의 군사들은 천방지축 절름거리는 발을 끌고 일제히 관을 버리고 산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산에도 매복한 석호군은 나무 등걸 뒤나 바위 틈새에서 갑자기 나와 기어오르는 유요군의 목을 후려쳤다. 유요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대장 평선도 난군 속에서 사라졌고 오로지 유아와 하경과 호연유가 혈로를 뚫기 위해 저돌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적은 밀려 나갔다가 다시 밀려오고 계속하여 공격의 손을 늦추지 않는 바람에 호연유는 몇 군데 창상을 입었다. 그런가 하면 하경도 화상을 입어서 바른 팔이 자유롭지 못했다. 황가도 불길 속에 잃어버린 유요는 얼른 말을 타고 관문을 향해서 도망쳤다. 그 뒤를 호연유 유아 하경 양서 마충이 따랐다.
 이때 석호는 관문에서 두어 마장 떨어진 곳에 있는 암벽 위에서 군사를 독전하고 있었다. 그는 유요가 반드시 이곳을 통과할 것이라 믿고 암벽 곳곳에 강한 노궁을 쏘는 군사들을 매복시켜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요의 영채에 화광이 충천한 후 두 시간 쯤 지나자 몇 명의 장수가 병졸을 거느리고 암벽을 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머리에 쓴 황금 투구와 몸에 두른 금포로써 유요를 가려내기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유요를 따르던 장졸이 말을 버리고 암벽에 기대어 산을 오르자 석호는 낮은 목소리로 노궁수들에게 사격준비 명령을 내렸다. 얼마간에 긴장이 흘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산위로 오르던 유요군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석호는 바위위에 올라가서 우렁차게 고함을 질렀다.
 “무도한 역적 유요는 내 앞에 나와서 대죄하라! 대장군 석호가 여기 있다.”
 유요가 깜짝 놀라 산위를 쳐다보면서 석호를 꾸짖기를
 “이 오랑캐 자식 놈아! 일찍이 짐은 그대의 아비를 양국에 봉왕하여 후대했거늘 그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느냐!”
 말을 마치고 유요는 철편을 휘두르며 석호를 취하려고 유아 호연유와 함께 산위로 쳐 올라갔다. 그러나 석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빗발치는 강한 쇠뇌는 마침내 유요의 걸음을 묶어 버렸다. 유요군은 저항력을 잃어버리자 석호군은 일제히 암벽과 나무숲에서 뛰어내려와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는 유요와 그의 장수들을 함빡 포박해서 석늑의 대채로 호송했다. 금포까지 흠씬 피가 밴 유요가 묶여서 앞으로 끌려나오자 석늑은 호탕한 목소리로 웃으며 유요를 희롱하기를
 “유공의 모습이 왜 이리도 처량하오?”
 유요는 금방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 때문에 말문을 열지 못했다. 오직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석늑을 쏘아 볼 뿐이었다. 그런 유요를 석늑은 참형으로 다스렸다. 애당초 석늑은 유요를 살려두고 한 급을 강등해서 봉왕할 생각도 가졌으나 좌우에 시립한 석호와 정하는 그와 같은 석늑의 뜻을 정면으로 반대하기를
 “옛 부터 이르기를 칼을 칼집에서 빼면 반드시 피를 본 연후에 꽂으라 했습니다. 오늘 유왕을 살리신다면 그의 성미로 보아 후일 틀림없이 폐하의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더구나 유왕은 한나라의 제왕의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옵니다. 그 자신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살기보다 죽음을 택할 것인 즉 마땅히 죽여서 그 이름에 흠이 가지 않도록 하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이리하여 석늑은 유요를 참형에 처하고 그 시체를 제왕의 예로 후하게 장사 지내게 하였다. 유요의 원통한 시신은 이제 호곡관 험산에 묻혔으나 넋은 슬피 흐느끼며 구천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유요를 참형에 처한 석늑은 장안에 대한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석늑군이 호곡관을 점령하고 그 승세를 몰아 질풍노도와 같이 장안으로 진격하자 장안에서 태자를 도와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유자원은 무도왕 양난적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양난적이 당도하기도 전에 석늑의 20만대군이 장안성 10리 허에 육박하였으므로 유자원은 긴급조치로 화포 조예 등 중신들과 의논한 후 태자를 모시고 상규로 피난했다. 상규는 일찍이 진안의 본거지로 성지가 튼튼하고 양초가 많이 비축되어 있어 방어하기 편했다. 석늑은 태자 유희가 상규성으로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자 곧 석호에게 10만군으로 상규를 치게 하고 자신은 장안성으로 무혈 입성했다.
 태자유희와 함께한 유신들은 황제 유요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상규성에 들어앉았다. 그러나 요새와 같은 성도 이듬해 봄에 석호의 맹렬한 공격 앞에 무너졌다. 그해가 함화 4년이었다. 태자 유희는 석호에게 생포되어 양국으로 호송되었다. 유자원이하 유신들도 더러는 자결하여 충절을 지켰으나 더러는 생포되어 후조국으로 끌려가서 굴욕을 맛보기도 하였다. 이로써 광문황제 유연이 한나라를 중흥한지 6대 26년 만에 전조(유요)가 멸망하자 후조(석늑)가 그 세력을 북방까지 떨쳐서 기업을 더욱 튼튼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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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20 [10:43]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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