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과부의 개가를 막는 양반의 법도가 사라지기 전 이야기.
16세에 소년과부가 된 딸을 둔 심 정승 댁. 별당에는 꽃 같은 고명딸이 청상이 되어 돌아온 지 세 해가 되었다. 그 동안 달을 원망하고, 나는 새를 원망하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명딸이 그리 사니 정승 내외분의 마음이야 오직 하리. 법도가 지엄하여 버선발을 문지르고 어금니를 곱씹으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함이 바른 표현일터.
그 해에도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새가 울며 짝을 찾고, 범나비는 이 꽃 저 꽃을 희롱하는데, 자수를 들여다보는 딸애의 눈가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그날 밤. 심 정승은 아내와 한동안 수작을 놓더니 좌랑 벼슬을 사는 아들을 불렀다.
“둘도 아닌 하나 뿐인 너 누이를 저리 두고는 못살겠다.”
아주 양반의 법도는 던져 버리고 동물적인 표현을 아들에게 하였다.
“너의 뜻은 어떠하냐? 그 잘난 양반 타령에 너의 누이가 저리 한숨으로 세월을 원망하고 사느니, 나는 이대로 더는 못 보겠다.”
“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효는 백행지본이라 하였습니다. 성인의 말씀이 그러하니 하늘인들 어찌 무심하겠습니까?”
“그래. 고맙구나, 딸 사랑 하늘도 알리라. 고맙구나. 날, 그리 도와주니...”
그들의 수작이란 다름이 아니었다. 업둥이를 두고 한 수작이었다. 사실 25년 전, 심정승댁에는 업둥이가 들어왔다. 마음씨 고운 부인이 자식처럼 길러서 장부가 되었다. 그날 밤. 업둥이와 고명딸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다음날 아침에는 딸 초상을 치뤘다. 일이 잘 되려고 이 일은 세상 모든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고, 심정승 내외의 근심도 거의 사라질 무렵 좌랑 벼슬을 사는 아들이 사냥을 다녀와 아버님 앞에 엎드렸다.
“그래 어찌 살드뇨?”
“아들 딸 삼남매에 논이 예순 두락, 소 코 뚜레가 한 죽이랍디다.”
“잘 되었다. 잘 되었어. 그 일 참으로 잘 되었구나.”
자식 사랑은 법도를 뛰어 넘는 법임을 알만한 옛 이야기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자식들아, 제발 부모님 깊은 뜻 헤아리고, 어서 백수를 면하라. 직업 없는 백수 자식 두고, 고심하느니... 부모 마음은 다 마찬가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