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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아름다운 마을 -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한다
 
최민호   기사입력  2020/05/05 [17:06]



손에는 작은 가죽 케이스를 들고 낡은 구두, 멜빵바지를 입고 모자를 쓴 나그네가 마을 어귀에 도착하였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마을은 점차 어두움이 깃들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낯선 마을이라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느티나무 정자주위에서 머뭇거리며 마을 안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가로수를 바라보며 그곳에 서있는 표지석 옆 의자에 걸터 앉았습니다.


-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한다.


표지석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표지석과 가로수와 그리고 마을로 들어가는 오솔길에서 망연히 마을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저 쪽.어스름하여 잘 보이지 않는 가로수 아래에서 선율 고운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듣는 이 아무도 없는 이 어스름 저녁에 나무 밑에서 홀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주 아주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갸냘펐지만 바이올린 소리는 멀리 퍼져 나갔습니다.


나그네는 바이올린 연주하는 사람에게 다가갔습니다.
연주에 열중하던 남자는 나그네가 다가오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군요. 외로운 산비둘기 같이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이 아름다운 연주는 누구를 위해 하시는 건가요?”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남자는 나그네를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포근한 눈빛이었습니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다니요...
저기 서 있는 느티나무가 듣고 있고, 하루 종일 서있던 가로수들이 듣고 있지요. 옆에서 자라고 있는 벼이삭들도 제 연주에 행복한 단잠을 잘 것이고요. 우유를 짜는 젖소와 송아지도 바이올린 소리에 살이 오르고 더욱 영양도 많아지겠지요.
저기 피어있는 달맞이 꽃은 더욱 아름답고 달콤한 향기를 피우지요...
저녁이면 제 음악을 듣는 이 많은 이들을 위해 저는 매일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


나그네는 어머니 품 속에서 잠이 든 아기같이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물었습니다.


“이 마을은 처음이시군요.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


“이 마을은 무슨 마을인가요?”


궁금한 것을 나그네는 물었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살죠.”


어둠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가로등에 하나 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로등 불빛은 은은했지만, 등마다 색깔이 달랐습니다. 연한 붉은 등이 있는가 하면, 황금색 빛등이 있고 푸른 등과 남색 빛이 나는 등도 있었습니다.
서서히 켜지는 가로등 불빛이 너무도 환상적이어서 나그네는 불빛에 넋을 잃었습니다.
바이올린 남자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의 가로등은 낮의 햇빛을 간직하고 있다가 밤에 빛을 냅니다. 그래서 무지개 색깔로 빛나지요. 저 불빛은 태양빛을 머금어서 꺼지지도 눈부시지도 뜨겁지도 않은 자연이 선사하는 불빛입니다.
마치 반딧불 같이요...


빛깔은 태양이 선사하는 것이지만, 밝기는 보름달이 어루만지는 선물이지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의 가로등은 환하게 비추는 보름달과 총총히 반짝이는 별빛보다 더 밝게 켜지거나 어두운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보름달과 총총한 별빛만큼만 빛나는 저녁을 맞이하지요.
손을 잡고 걷는 사랑하는 연인의 양 볼과 반짝이는 눈빛과 잡고 있는 하얀 손이 보일정도 만큼만요.
비가 오나 구름이 끼나 한결같이요...”


나그네는 어둠이 짙어지자 더욱 부드럽고 은은하게 밝아지는 가로등 불빛을 보았습니다.
바이올린 켜는 남자가 나그네에게 물었습니다.


“식사는 하셨는지요?”


“저녁 요기는 했지만, 먼 길을 걸어와서 목이 마르군요.”


연주자는,“오. 그러시군요. 저런... ”


하면서 옆에 서있는 가로수에 다가갔습니다.
가로수의 가지 하나에서 나뭇잎을 땄습니다.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진 가지에 컵을 갖다 대는 것이었습니다.


“오. 이 나무는 사과나무군요. 나뭇잎에서 사과 주스가 나오네요.
옆의 나무는 자두군요. 그 옆은 오렌지이고요. 오늘은 모두들 더 달콤할 거예요. 달콤한 곡을 연주했거든요.
한 번 맛보세요.“


하면서 주스를 나그네에게 건넸습니다.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신선하고도 달콤한 사과주스였습니다.


“내일 저녁에는 좀 새콤한 연주를 할까 해요. 어떻겠어요?
새콤한 사과주스도 좋지 않겠어요? 매일 저녁 맛이 다르게요.”


나그네는 말을 잃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믿어지지 않는군요.”


바이올린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습니다.


“여기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이니까요.”


“그런데 그 손에 든 가죽케이스는 무엇이죠?
왠지 궁금하군요.“


“ 아, 이것은 플륫입니다. 제 소개를 안드렸군요. 저는 플륫 연주를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가 연주하던 악단과 계약기간이 끝났죠. 그래서 다른 연주할 곳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오. 그래요? 반갑군요. 어쩐지 음악가처럼 보였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 잘 오셨습니다. 우리 함께 저 가로수와 송아지와 청보리와 피어나는 꽃들에게 연주 한 곡 선사할까요?
혹시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에 그대와.“라는 곡을 아시는지요.”


플륫 나그네가 가죽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냈습니다.
플륫은 은빛으로 빛났습니다.
바이올린과 플륫의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화음이 잘 어우러진 두 사람의 연주가 점점 무르익어갔습니다.
어둠은 더욱 깊어갔고, 가로등 불빛은 점점 밝아졌습니다.
두 사람의 연주소리는 더욱 멀리 퍼져갔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의 거리 이곳 저곳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카페에 불이 들어오자, 레스토랑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과일가게의 도어가 열리자 옷가게의 창문이 열렸습니다.
책가게, 빵가게의 진열장이 환히 밝혀졌습니다.
거리는 색색의 등불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친하게 된 두 거리의 악사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광주리마다 가득 담긴 바겟트 빵과 여러 종류 수도 없이 많은 빵이 제과점 진열장에 보이는가 하면, 이국적인 향기가 감미롭기만 커피가 악사들을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말했습니다.


“시장하시면 식사라도 같이 하실까요?”


플륫 나그네는 망설이다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과주스 한잔으로 충분합니다.사실... 저는 돈이 없습니다.”


바이올린의 남자는 플륫의 남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 처음이시니까요. 여기는 돈이 필요없습니다. 드시고 싶거나 가지고 싶으시면 가게에 가서 가져가면 됩니다.”


“아니, 어떻게? 그러면 지불은 무엇으로?”


“여기는 돈이 없습니다. 돈은 각자의 재능이지요. 플륫을 잘 불어 지불하면 그것이 돈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럼 물건파는 사람은 어떻게 살지요?”


“사고 파는 게 없으니까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음식을 만들어 가게에 진열하고, 옷 만드는 사람은 옷을 만들어 가게에 내놓지요. 그리고 각자가 필요할 때 가져가면 되는 거지요. 옷가게 주인이 배고프면 식당에 가고, 식당주인이 추워지면 옷가게 가서 옷을 가져가서 입지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건가요?”


남자는 담담히 말했다.


“여기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이니까요.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는 세상에 차고 넘치는 세 가지가 없답니다. 돈과 욕심과 경쟁이지요. 그러니 가능하지요.”


“오. 정말...그런데도 열심히 일을 할까요?”


“오. 정말... 가련하게도...이해가 가지 않으시겠지요. 그 대신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는 세상에는 드문 세 가지가 넘친답니다.‘순수’와 ‘품격’과 ‘배려’지요.


우리는 누구든 하늘이 준 재능이 있습니다.
그 재능은 사실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지요. 각자가 가진 재능을 최선을 다해 일하고 나눈다면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가난하거나 억울한 사람이 없이 살 수 있도록 세상은 원래 그렇게 풍요로운 곳이랍니다.
공평하게요...
순수하게 자기 재능에 최선을 다하고, 품격있게 스스로를 지키며,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만 있다면 다 가능한 일이지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는 이 세 가지가 차고 넘친답니다. ”


나그네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그네는 살찐 듯 두둑한 머핀 빵에 뜨거운 커피가 그리웠습니다.
바이올린 남자는 주저하는 플륫의 소매를 끌고 매혹적인 향기가 코를 간질이는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카페주인이 두 사람을 보더니 반색을 하였습니다.


“가로수 그늘에서 연주를 하던 두 분이군요. 오, 정말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그 연주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정말 너무도 아름다운 연주였습니다. 맛있게 무엇이든 드십시오. 그런 연주에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나그네는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 보다 더 맛있는 머핀 빵과 커피를 마셔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주인의 말에 용기를 얻어 그는 몇 번씩이나 머핀 빵과 커피를 가져와 그동안의 허기를 만족시켰습니다.
놀랍게도 주인은 나그네가 많이 먹을수록 더욱더 감사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이렇게 저의 솜씨를 인정해 주시는 배려를 해주시다니 무어라 감사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내일은 더 맛있는 빵을 준비하겠습니다. ”


그는 진심으로 자기의 재능을 알아주고 평가해 주는 두 악사에게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음악가는 식사를 마치자 말했습니다.


“이 과분한 대접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몇 곡 연주해 드리겠습니다.”


이제까지 나그네는 이렇게 최선을 다해 플륫을 연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오직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순수한 연주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그네는 진실로 마음이 기뻤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고 눈을 들었을 때 그는 또 놀라고 말았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카페 문밖 가득히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연주를 경청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품격있는 모습들...


그날 나그네는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을 다해 마을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연주에 밤이 다가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열화같은 박수로 호응하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 사람들...
이보다 더한 만족감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재능들을 접시에 담아 왔습니다.
목장주인은 우유를, 포도 농장주인은 와인을, 과자 가게주인은 과자를 손에 손에 들고 왔습니다.
파티가 열렸습니다.
바람은 선선하였고, 달빛은 은은하였습니다.
마을사람들의 눈빛은 평화로왔고, 그 미소는 온화하였습니다.
오늘 저녁 그들은 플륫을 연주하는 나그네 덕분에 행복이 가득하였습니다. 사랑이 넘쳤습니다.


나그네는 억만금보다 더 많은 개런티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돈이 필요하지 않다...
이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서는 무슨 나무든 열매를 맺으면 그것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되었습니다. 나뭇잎에서는 얼마든지 주스가 흐르고, 농장에 있는 채소나 곡식이나, 목장의 우유든, 계란이든 누구나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재능을 존중하였습니다.
목장주인만큼 신선하고 맛있는 우유를 만들 수는 없었고, 농장주인보다 더 풍성하게 곡식을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남의 재능을 넘보지 않고, 서로서로의 재능을 존중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나그네가 카페주인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은 언제부터 생겼나요?”


카페주인이나 마을 사람들은 빙글빙글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이렇게 말해주었을 따름이었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하지요. 맑은 낮의 태양이 노을을 아름답게 만들듯이, 저녁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젊은 나날이 맑아야 합니다.
여기는 세상에 있는 것이 없고, 없는 것이 많은 곳입니다.
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마 신기한 것을 많이 보게 될거예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러나 원래 그러해야 했던 것들을요....”


나그네는 그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 아침이 오면 어떻게 되나요?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는 누가 주인인가요? ”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왜?
여기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이니까...
마지막으로 나그네는 그들에게 간청했습니다.


“제가 여기에 살아도 될까요? 저도?”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살든, 머물든, 지나가든, 여기서는 누구든 마음대로입니다. 세 가지만 버리신다면... 돈, 욕심, 경쟁...”


나그네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또 다시 올 내일 저녁이 기다려졌습니다.
어떤 사람, 어떤 일, 어떤 저녁을 만나게 될까...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여기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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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05 [17:06]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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