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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목숨
 
최민호   기사입력  2020/01/16 [12:54]

 숨이 점점 가빠진다.
심장의 고동이 점점 느려지고 약해진다.
목이 마르다.

이제 곧 숨이 멎어지겠지.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문을 쳐다보았다.
문에 시선을 직선으로 고정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단 한번,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녀의 입술에 마지막 키스를 하고, 그녀의 손길을 부드럽게 느끼면서 나의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의 이 고통쯤은 아무렇지 않게 잊을 수 있으련만...    
의식이 가물거려진다.
문득 그녀가 나타나 왜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냐고 원망할까봐 두렵다.
미안하기 그지없다. 미안...

이내 숨이 멎어졌다. 
나는 죽었다...

수연이. 내 사랑...
내 평생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단 한시도 없었던 그녀.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며 나의 손끝, 나의 털끝, 나의 온 신경과  감각을 다 바쳐 사랑했다.
목숨까지...

그녀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동갑내기로 태어난 그녀와 나는 갓난아기 때부터 한 방에서 같은 우유병으로 젖을 먹었다. 엄마는 우리를 한시도 곁에서 떼어 놓지 않고, 그렇게 예뻐하며 길러 주셨다.

그때부터 느꼈던 수연이와의 사랑.
수연이의 그 입에서 나는 젖 냄새, 겨드랑이 살 냄새...
황홀하기 그지없는 사랑의 냄새였다.
수연이도 나에게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엄마보다도 우리 서로를 더 찾고 더 느끼며 더 사랑하였다.
어린 것들이 무슨 사랑이냐고?
우리가 사랑을 모른다고?

그러면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서로 살갗을 느끼고 싶고, 혼자서 곁을  독차지하고 싶은 그 아련한 느낌이...

엄마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많이 알고 있었다. 알 것은 다 알았다.
엄마의 눈빛에서 기쁨의 별빛과 슬픔의 냇물을 다 느낄 수 있었고,
엄마의 가슴에서 근심과 안도의 두근거림 소리를 다 듣고 있었으며, 아빠에게 향한 목소리와 우리를 향한 목소리가 얼마나 다른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런 것들은 수연이보다도 내가 더 영리하게 잘 아는 것 같았다.
수연이는 말하자면 알긴 아는 것 같은데, 느렸다.
능청맞기도 한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양 내숭떨며 어린양하는 수연이를 보면 얄밉기도 했지만, 엄마에게는 그것이 귀여운 재롱이었다. 그런 수연이가 나도 사랑스러웠다.
수연이의 그 사랑스런 모습과 하얀 몸에서 났던 그 좋은 냄새.
나는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돌이 지났다.
수연이의 발육은 왠지 나보다 떨어졌다. 현저하게 떨어졌다.
걷는 것, 말하는 것, 심지어 손가락 움직이는 것도 수연이는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엄마는 영민한 나를 칭찬해줄 줄 알았는데, 엄마의 사랑은 늘 수연이 였다.

제법 걸어 다니게 되면서 집안 구석구석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을 때, 아빠와 엄마가 안방에서 나누는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의미야 물론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감이 있고 촉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와 아빠가 긴장된 분위기에서 말다툼을 하였다.
수연이와 나를 한번 둘러본 뒤, 안방을 걸어 잠그고, 언성이 높아지며 흥분과 긴장이 고조된 분위기에서 숨을 죽이며 두 분은 다투었다.
다툼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수연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잠들고 있었지만, 두 분의 그런 모습에 나는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안방 문 앞에 가서 그만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화들짝 문을 열고 나온 엄마는 놀라는 한편,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더 크게 울며 엄마에게 매달렸다. 엄마는 나를 달래면서, 혹시 내 울음에 수연이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엄마가 화를 내는 모습은 그때 처음 보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로인해 나는 수연이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엄마는 멋진 잔디가 있는 마당이 딸린 작은 방으로 나를 옮겨 주었다.
나름대로 아늑하고 쾌적한 방으로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오직 서운한 것은 수연이와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늘 가까이 하면서 같이 먹고, 같이 잠자고 싶었던 내 사랑 수연이...

그때의 서운한 마음은 지금도 가슴에 짠하다.
수연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수연이 방 앞에 기어가 기웃거리며 그녀를 찾았지만, 느리고 둔한 수연이는 애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쩌다 나를 보았을 때만, 귀여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만지고, 볼을 비비면서 반가워 할 뿐이었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흘렀다.

이제는 홀로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점점 손발에 힘이 가고, 눈이 밝아지며, 귀가 예민해지면서부터였다.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려왔다. 아주 미세한 냄새도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피가 점점 뜨거워져 내뿜는 힘을 참아 내기가 어려워졌다.
어느덧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귀를 반듯하게 세웠다. 자존심도 꼿꼿하게 세웠다.
엄마가 주는 것이라 해서 아무것이나 먹지 않기로 했다.
품위있고 매너있게 나의 자리와 식기를 챙겼다.
옆자리에 아무나 앉을 수 없도록 위엄을 세우기로 했다.
나의 존재감을 내세워야 하겠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온몸에 힘이 빠지는 사랑하는 수연이를 제외하고는...

가문을 더럽히지 않겠다라는 의식이 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뼈대있는 가문의 자식으로 날 키워준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아야 했다.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나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돗개다.”

수연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엄마도 아니 어느 누구도, 나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긴 나를 얼마나 알겠는가?
내가 그들의 70배나 발달된 후각을 가지고 있어, 엄마냄새, 아빠냄새, 우리 집을 찾아온 모든 사람의 독특한 냄새를 한번 맡으면 다 기억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2만번의 진동을 겨우 감지할 때, 우리는 10만에서 70만번의 진동수를 가려내 발자국 소리 하나로 그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는 걸...

뿐이랴. 수백미터 떨어진 숲 속의 암컷 고라니가 갉아 먹고 있는 저 고구마가 순돌이 할머니네 밭 고구마라는 걸...

배고픈 호랑이를 우리에 가둬놓고 먹이로 던져 주었다는 진돗개 세 마리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호랑이를 잡아먹고 있었다는 옛 전설의 피가 아직도 내 혈관에 흐르고 있다는 걸...

우리를 길들이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맨몸으로 우리의 능력을 당할 수 없어 우리를 신과 같이 숭배하고 보호천사로 여기던 시절이 수 만년에 이른다는 걸...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줄 알아 그 주린 배를 해결하기 전, 사냥으로 겨우 허기를 달래던 시절에는 감히 우리를 목줄로 메어 놓고 먹이를 던져 주는 무엄한 행동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는 걸...

그런데,
저 비굴한 푸들이나 말티즈, 포메라니안, 시추, 치와와...

저 녀석들은 그저 혀로 핥고, 온몸으로 아양을 떨면서 얼굴과 털로 갖은 우아를 다 부리며 주인의 사랑을 차지하고 호사스럽게 먹고 살고 있지만, 주인만 없으면 표변하여, 똥 오줌을 아무데나 갈기고, 제 것과  주인 먹을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게걸스럽게 주둥이를 들이대다가, 주인만 나타나면 다시 웃음을 파는 것을 보면, 모가지를 한 입 덥석 물어 날카로운 송곳니 맛을 보여주고 싶지만, 가련한 나의 천성인 충성심으로 오늘도 참고 있을 따름이다.

오랜 옛적부터 우직한 나의 동료들...

그레이 하운드, 셰퍼드, 그레이덴, 복서, 뉴펀들랜드, 세인트 버나드, 마스티프...
적군과 싸우는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전쟁이 없으면 사냥을  하고, 늑대와 승냥이로부터 양을 지켜 주인을 돕다가, 최후의 순간에는 목숨을 바쳐 그 고기를 식량으로 주인에게 헌신했다.

또 잊지 못할 전사들이자 사냥의 명견..,
포인터, 세터, 스파니엘, 키 작은 테리어...

단단한 어깨에 강골의 뼈와 근육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거인같은 친구들...
평생 눈밭에서 썰매를 끌면서 따뜻한 스우프 한 그릇에도 감사를 잊지 않는 충직하고 멋진 사나이들의 개...
사모예드, 엘크 하운드, 차우차우, 시베리안 허스키...

삽살개도 좋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 외로운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 손을 이끌어주고, 뒹굴며 놀아주고, 부드러운 털과 따스한 체온으로 위로해 주는 인정 많은 개...
레트리버...

진돗개라는 우리 가문.
뼈대있는 가문의 명성에 답하고자, 나의 눈은 밤에도 형형히 빛을 내며 한 눈을 판 바 없고, 나의 귀는 언제나 꼿꼿이 세워 경계를 가벼이 하지 않았으며, 왼쪽으로 말아 올린 꼬리로 나를 키워 준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두 주인을 결코 섬긴 바 없었다.

초능력적인 후각과 시각, 그리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향감각으로, 주인이 바뀌어 수 천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어도, 처음 주인이 있는 진도로 홀로 되돌아 왔을 때의 능력과 인내심...
사람들은 우리의 동상을 만들어 그 놀라운 의리와 충성심을 기려주었다.

나의 관찰력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주인의 가족과 친지와 이방인을 정확히 가려내 대접할 줄 알았고, 주인에게 적대감있는 사람에게는 유감없이 이를 드러내어 위협하곤 하였다.
알 것이다.
나의 이빨은 한번 물면 나의 팔다리가 끊어져 너덜거릴지라도 목숨이 다할 때까지 놓는 법이 없어 최후의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이었다는 것을.

주인의 명령없이, 감히 훈련이라는 이름으로는 나를 길들일 수 없다. 

미 육군에서 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군용견으로 훈련시키고자 하였으나, 나를 길러준 주인이 아니면 명령에 따를 수 없어 결코 순종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연이.
작은 그녀의 고사리 같은 손과 눈빛에는 고양이 앞의 생쥐같이 오그라들기만 한다. 
오. 사랑하는 그녀...

수연이는 입을 오므리며, 종알대며, 아장아장 걷는 네 살에 불과했지만,  나의 앞다리는 강철같이 곧아졌고, 뒷다리는 치타와 같이 굵어졌다.

어느 날, 수연이가 나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녀의 그 상큼한 내음. 그 보드라운 살결...
푸른 잔디가 있는 앞마당에 슬리퍼를 신고, 작은 손으로 나의 꼬리를 흔들고, 내 이빨을 만지며 쓰다듬는 수연이에게 나는 혹여 상처를 입힐까봐 가슴 조마조마하며 더욱 몸을 옹송거려 조아리기만 했다.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 냄새를 맡아 기억하고자 했다.
수연아. 가만히 좀 있어 봐...
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나의 코와 예민한 관찰에 의하면 아빠의 직업은 의사였다.
가방속의 흰 가운에서 스며 나오는 클로르 칼크 소독약 냄새..
퇴근할 때마다 풍기는 각기 다른 약 냄새와 가끔 고약하게 나는 역겨운 냄새들...
수술 후에 적출한 환부의 냄새가 몸에 배어 이런 고약한 냄새를 난다는 것을 나는 이내 알았다.
멀리서 승용차가 눈에 들어오면 그것이 아빠의 차인지 아닌지는 냄새를 맡아 1km밖에서 알아보았다.

아빠는 아마 모를 것이다. 
사람의 장기마다 냄새가 다르다는 것을.
심장과 위장과 간장의 냄새가 각각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고, 건강할 때와 이상이 있을 때 냄새가 달라진다는 것은 더욱 당연한 것이다.
명의라 소문난 의사들도 MRI를 찍어보고, CT찰영을 해보아야 병을 진단할 수 있는 모양인데, 그나마도 해석에 따라 다른 것은 그만큼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말일 것이다.
우스운 일이다.

70배의 고배율의 후각으로 맡아보면, 사람들의 병이 어디 부위에서 발생한 건지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병명이나 다른 정보들을 표현할 수 없어서 망정이지...
의과대학을 다닌 것도 아니니...

개들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항문의 냄새를 맡으면서 상대방의 생리주기, 건강상태, 컨디션, 성적인 감정, 그리고 적대적인지, 친화적인지 숱한 정보를 순간적으로 파악하여 다음 태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믿어준다면 우리의 이러한 특별한 능력도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빠가 유난히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냄새가 더욱 고약했다.
장시간의 수술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주 고약한 그 냄새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암 덩어리의 냄새였다.
아빠는 외과 수술 의사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냄새로 가득하다.
냄새로부터 자유로운 사물이 있을까?
냄새 없는 사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천적이다.
다행히 세상에 냄새 없는 것은 없으니, 후각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코 하나만으로도 눈과 귀를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공중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모습을 본다면, 바람결에 실려 오는 모든 존재와 사연들의 냄새 속에서 우리가 바로 이곳에 실존함을 확인하는 몸짓으로 보면 옳을 것이며, 그 몸짓 또한 우리의 주인을 지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진돗개에게는...

수연이는 발육이 여전히 늦기만 했다.
네 살이라지만 마른 몸매에, 또래에 비해 키도 작았다. 엄마는 잘 먹지않아서 그렇다고 늘 걱정하셨다.
입이 짧은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입맛이 없다는 것일테니...
가끔씩 잔디밭 정원에서 나와 놀 때만은 기운이 넘치지만, 그것도 짧은 순간, 이내 싫증을 내곤 피곤해 했다.
천성이 몸이 아픈 아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오늘 햇볕은 참 따스했다. 수연이도 엄마도 뜰에 나와 햇볕을 쪼이며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수연이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수연이의 그 좋은 냄새...
나는 코를 흠씬거리며 수연이의 몸 여기저기 향기를 맡아보고, 혀로 핥아보며 모처럼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내가 그녀를 앞발로 건드렸을 때, 수연이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엄마가 불에 덴 듯 놀라 수연이를 부둥켜 안았다.
수연이는 배를 만지며 더욱 자지러지게 울었다.
엄마는 나를 큰소리를 내며 쫒아냈다. 내가 수연이를 어떻게라도 한 줄 아는 모양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희미하나마 수연이에게서 풍겨 나오는 한가닥 냄새.
이 냄새가 수연에게서 나오다니.
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수연이에게 막무가내로 가까이 다가갔다.
엄마는 그런 나를 소리질러 야단치며 급기야는 빗자루를 꺼내들고 나를 쫒아내고 수연이를 안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나의 심장이 두근거린다. 마구 두근거린다.
수연이는, 수연이는,
그 고약한 냄새는...
암 냄새였다.

어린아이에게 무슨 암이?
그래서 엄마는, 아빠도 상상도 못하고 계시는 듯했다. 
틀림없다. 나의 후각은 속일 수 없다. 위암이었다. 초기단계의...
엄마가 안아주고, 달래주자 수연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내 잠잠해졌다.
엄마는 나만을 원망하고 계시리라...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수연이는 그 뒤로 나와 더욱 멀어졌다.
엄마는 나를 바짝 경계하며 좀처럼 수연이를 가까이 하지 않도록 주의하셨다. 엄마와 아빠는 수연이에게 아무런 낌새를 못 느끼고 있었다. 
냄새가 더욱 진해지고 있는데도...

나는 안달이 되었다.
수연이가 있는 방문 앞에서 끙끙대며 수연이를 찾았다.
수연이가 혹여 보일 때면 나는 컹컹 짖으며 수연이를 큰 소리로 불렀다. 울부짖고 으르렁거렸다.

“사랑이가 이상해요. 우리 수연이에게 함부로 덤벼요.”

엄마는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아빠에게 말하였다.

“사랑이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할까 봐요. 지난번같은 일이 생길까 겁이 나요. ”

나는 겁이 더럭 났다.

“안돼요. 안돼요!”

나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지고, 먹을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경질이 난다.
택배나 우체부나 집에 찾아오는 쓸데없는 사람을 보면 마구 짖어댔다.
의사인 아빠에게 나의 의사를 분명히 전하기로 결심했다.
퇴근하는 아빠를 향해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수연이가 위험해요. 암이예요. 위암이란 말이예요. 아빠...!”

아빠는 큰 소리로 짖어대는 나의 위협적인 경고에 깜짝 놀랐다.
방안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물면서 컹컹 외쳤다.

아빠는,

“얘가 왜 이래!”

하면서 발길로 나를 걷어차고는, 마구 짖어대는 나를 피해 방으로 뛰어 들어가고 말았다.

사단은 벌어지고 말았다.
나를 산 속에 있는 과수원집 주인에게 팔기로 하였다는 말이 두런두런 들려왔다.
나는 극심한 불안감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수연이와 헤어진다는 서러움과 수연이를 구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수연이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속수무책이었다.

일주일 후 과수원집 주인이 우리 집에 찾아오기로 되었다.

나는 웅크리고 앉았다. 밥도 거부하였다. 잠도 자지 않았다. 내 생각에 골몰했다. 몰골이 점점 피폐해져 갔다. 눈빛은 황달이라도 걸린 듯 누렇게 뜨고, 콧등의 찬 물기도 푸석푸석 말랐다. 
쫑긋하던 내 귀가 풀이 죽어 꺾여 숙여졌다.
수연이를 볼 수가 없었다. 만날 수가 없었다. 나를 묶어 둔 쇠사슬의 강도를 이길 수가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보려고도, 가까이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정을 떼야 한다고 느끼고 계시겠지...

일주일 후,
굵은 밧줄로 만든 목줄을 손에 거머쥔 과수원집 주인이 집에 왔다.
아무 관심이 가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주인으로 섬길 수 없는 사람이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얌전히 순종하였다.
아빠와 엄마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새 주인 만나 행복해라. 사랑아. 그동안 고마웠어.”

엄마는 진심으로 섭섭해 하셨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연이. 그때 수연이가 졸망졸망 걸어 나왔다.
오, 그토록 보고 싶던 수연이...

‘하나님 한번만 저 귀여운 손으로 저를 쓰다듬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수연이가 나에게 살금살금 다가왔다.

“안녕...
사랑이 안녕...”

나를 쓰다듬는 그 손길, 비단결 같고 봄날의 햇살같이 따듯하기만 한 그 손길...
나는 눈이 스르르 감기었다.
그런데 이 냄새...
더 독해져 있었다.
아, 참을 수 없다. 이 고약한 냄새..
이건 아니야...

나는 덥석 그 고약한 냄새 덩어리를 물어 버렸다.
우 워 어엉....

수연이는 그 자리에서 배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버렸고, 나는 삽자루로 머리를 맞아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으랴..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고약한 냄새들의 한 가운데에 묶여 있었다.
악취...
배설물의 악취... 썩어가는 시체들의 악취... 고약한 약품들의 약취...
내가 끌려 온 곳은 과수원이 아니었다. 
그곳은 동물들을 안락사시키는 집단 수용소였다.
용서받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나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었다.

목을 드리우며 나는 사형집행을 기다렸다. 
최후의 순간이나마 가문의 영광에 욕되는 모습으로 나를 보이기는 싫었다. 억울한 죽음이지만, 근엄하고 경건하게 맞이하기로 했다.

‘악법도 법이므로...’

안간힘을 쓰며 처절하게 반항하며 울부짖는 저 불쌍한 녀석이 끝나면, 내 차례가 오겠지. 
이름도 알 수 없는 지독하게 고약한 저 주사바늘이 나의 목 혈관에 꽂혀 들어올 때, 나는 형형히 빛나는 내 눈빛을 그들에게 꽂아 주리라.
힘을 주어, 늘어져 버린 나의 두 귀를 꼿꼿이 세워 전혀 겁먹지 않았다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리라.
두 다리를 곧추 세워,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결코 내가 먼저 드러눕지는 않으리라...

진돗개.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자 온갖 추억이 필름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수연이와 젖을 나누어 먹던 시절..
엄마 품에 안겨 입을 맞추며 사랑을 핥던 추억...
잔디밭에 나와 수연이를 생각하며 밤을 지키던 순간들...
녀석들...
주제도 모르고 덤비다가 혼이 나고선 다시는 얼씬도 못하던, 생쥐, 고양이, 꿩, 눈이 찢어진 도둑놈들...
그리고 수연이에게서 났던 그 고약한 냄새...
암 덩어리를 물어뜯은 무모한 만행...
불과 5년여에 불과했지만 후회없는 삶이었고 행복한 삶이었다.

힘이 자꾸 빠진다.
눈이 자꾸 감기려 한다.
안되지. 죽을 때까지 앞을 응시하지 않으면 안돼...
팔다리가 끊어져도 끝까지 숨통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던 혈통...
나는 진돗개야.

문을 향해 시선을 직선으로 고정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봤다. 수연이... 
단 한번,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녀의 입술에 마지막 키스를 하고, 그녀의 손길을 부드럽게 느끼면서 나의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환각이 보인다.
멀리서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리가...

“잠깐. 잠깐...멈추어요.”

아빠의 목소리였다. 헐레벌떡 아빠가 달려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의 눈과 귀를 의심했지만, 아빠였다. 아빠의 냄새였다.
아빠는 손을 내저으며 나에 대한 처형을 멈추라 했다.
그리고 달려와서는 나의 목을 껴안았다.
엄마도 이내 달려왔다.

“사랑아. 고맙다. 고마워...
네가 우리 수연이 목숨을 구해주었구나... 사랑이가...“

그만 배가 고팠다.

아빠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병원이었다.
수연이가 입원해 있는 곳이었지만, 수연이를 만나게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부터 일해야 할 곳이었다.

수연이는 나에게 물리자마자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개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가지 검사를 하였다.
파상풍 검사에서부터 광견병 검사, 바이러스 감염에 관한 검사를 하였다. 아빠는 그 과정에서 수연이의 위장에서 암세포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내가 물어뜯은 그 부위였다.

어린이에게 희귀한 소아암이었다. 암은 상당부분 진전되어 있었다. 더 늦었더라면 수술을 해도 수연이의 체력이 감당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는 판단이었다.
아빠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였다.

진돗개가 어린 생명을 구했다는 것은 대단히 큰 뉴스였다.
TV뿐만이 아니었다. 유튜브를 통해, SNS를 통해 전 세계로 나의 이야기는 퍼져 나갔다.
‘동물농장’, ‘세상에 이럴 수가’등 수많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도 ‘깜짝 쇼’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무엇보다도 개의 초능력에 과한 화제가 줄을 이었다.
특히 진돗개에 대한 클릭수가 수억회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가문의 명예에 일조를 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빠의 집중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적출된 각종 암 덩어리의 냄새를 맡고 다시 이를 찾는 훈련이었다.
예컨대 폐암의 세포 냄새를 맡고서 여러 시험병에 들어있는 암세포 샘플 중에서 폐암세포를 찾아내는 훈련같은 것이었다.
마약 수색견이 각종 마약의 냄새를 맡고 가방 속에서 이를 찾아내는 훈련과 동일한 것이었다.
식은 죽 먹기였다.

이번에는 환자를 직접 임상에 올렸다.
나는 환자의 냄새를 맡고 동일한 냄새가 나는 시험병을 눈으로 가리키며 짖었다. 백발백중이었다.

병원에서는 나의 1차 진료에 환자들이 환호를 하거나, 치료를 위한 수술을 서둘렀다. 수일간에 걸쳐 정밀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그 다음 순서였다.
나는 즉석 자판기였다.

진도에서 수많은 진돗개가 불려와 테스트를 받았다. 예비 의사시험을 보는 것이다.
인술을 행하는 견공들... 진돗개의 특출한 하늘의 능력...
진도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우리 가문은 의술의 명가로 다시 태어났다.
나는 암 전문이었다.
곧 당뇨 전문, 혈압 전문, 난치병 전문의가 탄생할 것이었다.
우리 자손들은 많은 후진국에 진출할 것이다. 노벨 의학상도 노려볼 만 했다.

수연이는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났다.
저렇게 예쁘고 튼튼한 수연이가 발육이 늦었던 이유를 상기할 때마다, 엄마의 마음은 매운 고추같이 아프다고 했다.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꽁치 통조림을 얻어먹었다.

이제, 내 나이 15살.
수명이 다했음을 누구보다 먼저 안다.
그런데도 매일매일 수연이가 그립다.
내 사랑...수연이...

이제 오늘이다.
내 생명이 다하는 날.
숨이 점점 가빠진다.
심장의 고동이 점점 느려지고 약해지고 있다.
목이 마르다.

이제 곧 숨이 멎어지겠지.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문을 쳐다보았다.
문을 향해 시선을 직선으로 고정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의 이 고통쯤은 아무렇지 않게 잊을 수 있으련만...    
의식이 가물거려진다.

문득 그녀가 나타나 왜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냐고 원망할까봐 두렵다. 미안하기 그지없다. 미안...

이내 숨이 멎어졌다. 
나는 죽었다...

뒷발로 서서 앞발로 수연이 두 손을 잡고, 혀를 내밀어 수연이 입술을 핥는 사진이 새겨진 비석을 뒤로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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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16 [12:54]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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