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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민간 소통은 어떻게 했을까?
대전시립박물관 11월의 문화재, 조선시대 민간 소통 문서 통문(通文)
 
이성무 기자   기사입력  2019/11/04 [17:01]


대전시립박물관이 11월 ‘이달의 문화재’로 조선시대 민간 소통문서 통문을 선정해 한 달 동안 전시한다. 


통문이란 조선시대 국가기관이 아닌 민간단체 혹은 개인이 다른 대상에게 보내는 통지문으로 공동의 관심사를 알리거나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원·향교·문중·유생이나 의병, 모반, 민란의 주모자들이 대체로 연명(連名)으로 작성해 보냈으며, 그 내용은 통지·문의·선동·권유 등 다양하다.


통문은 윗사람에게 보고 하는 문서와는 다르게 백성 간 서로 수평적인 관계에서 주고받았다.


조선시대 가장 많이 사용된 통문 중 하나는 서원·향교·유림에서 보낸 것으로 서원의 건립이나 보수, 효자·열녀·증직(贈職) 등 표창 건의, 문집 발간, 향약 계 조직 등에 대한 내용이 많다.


이외에도 임진왜란·병자호란 때에는 모병(募兵)과 군량의 조달을 위한 통문이 작성돼 의병의 조직화에 이바지했으며, 민란이나 혁명 시에는 협력을 촉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관에서는 통문의 형식을 사용하지 않고 주로 일반 백성들이 이용했기 때문에 문체는 한문이지만 이두(吏讀)문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이 특색이며 한글로 쓰인 것도 있다.


이번에 전시하는 통문은 1907년 3월 전주향교도회서(全州鄕校都會所)에서 전북 태인군에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의 사우를 건립하는데 드는 일부 비용[400냥]을 남원향교(南原鄕校)에 청하는 통문인데, 문서에 연명한 56인의 명부도 적혀있다.


최익현은 항일의병장으로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전북 태인(泰仁)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순창(淳昌)에서 의병을 이끌고 관군·일본군에 대항했으나 체포돼 대마도에 유배된 후 대마도에서 순국했다.


이외에도 전시된 통문과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 최익현의 면암연보(勉菴年譜), 조선시대 우국지사(憂國之士)로 을사조약 이후 구국활동에 힘쓰다 1912년 자결한 심석재 송병순(心石齋 宋秉珣)이 1909년 제향(祭享)과 향사(享祀)에 관한 일로 작성한 통문을 전시한다.


대전시립박물관 관계자는“통문은 대중매체가 없었던 조선시대에 비교적 신속하고 정확하게 내용을 알리는 역할을 한 문서”라며 “주고받은 내용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자료”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대전시립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진행되며, 자료에 대한 기증기탁, 수집 제보는 상시 가능하다.(문의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실 042) 270-8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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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4 [17:01]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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