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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에서 금·박이라는 양심을 보았다.
 
이순복   기사입력  2019/09/16 [13:43]
▲ 이순복 논설위원     ©

아무리 크고 건강한 나무도 좀이 먹어 병이 들면 썩어 내리고 나중에는 구멍이 뚫려 제 생명력을 잃게 하는 중한 독이 된다.


그런데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정치란 생물과 같은 것으로 우리가 지켜 본 바에 의하면 정치 현장에서는 오만과 편견이 제 몸을 죽이고 제 동료들도 모두 다 구렁텅이로 빠뜨린다는 사실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 현장은 여론조사라는 것을 해서 그것을 토대로 정치를 이어가는 모양인데 그 여론조사를 진실 되게 믿는 사람이 드물다.


일례를 들면 이렇다. 머시깽이 여론조사 기관입니다. 몇 살이세요.? 70이 넘었네요. 과거직업은 뭐였나요? 월급쟁이였지요. 말씨가 전라도 같은데요? 그렇소만 할 말은 다하고 사오. 철거덕. 여러 번 만난 일은 아니지만 이것이 어찌 여론조사 방법일까? 궁금해 하고 있다. 전화를 걸어 여론조사를 하려면 물을 것 다 묻고 얻을 것 다 얻은 후에 성별, 연령. 고향. 과거력을 묻고 자기 회사에 가서 취사선택을 할 일이지 이게 무슨 실례란 말인가.? 이것이 매주 발표되어 인민의 눈속임을 한다면 이것은 작은 사건이 아니라는 이야기들이 많고 많다.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보인 것들마저도 믿음이 가지 않은 것들이 하도 많아 졸지에 답답한 심정이 우리 집 하수구가 콱 막힌 것 같아 쓴 글이 너무 튀는 것은 아닌지 조심이 된다. 그러나 역사는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시저를 죽인 부르타스를 영웅시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우리 역사에서도 박정희를 죽인 김아무개씨도 영웅 측으로 등장할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 같이 콱 막혀버린 우리 집 하수구 같은 정국의 암울함을 뻥 뚫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터가 명당 터라서 그런지 북한을 악질분자들에게 내어 준 후로 하는 일이 모두 다 같이 민주주의의 모범될 텍스트나 다름없는 사건들을 창출해 내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서 늘 말썽이 되는 것은 정권을 잡은 대통령제라는 모순덩어리 헌법이 그 앞에서 어릿광대노릇을 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나라의 정치나 경제는 세계가 배우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도약하고 있음은 이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역사를 약기해 보기로 한다.


1970년대 초에는 3선개헌으로 유신정권을 출범시키면서까지 장기 집권을 획책, 18년간의 독재를 통해, 대한민국에 功過를 동시에 선보이며 國論과 地域을 兩分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끔찍한 재앙으로 다가왔다.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찌기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문세광의 흉탄에 잃고 갑자기 어린 나이로 프랑스 유학중 급거 귀국해야하는 운명을 맞았 었다. 귀국 후 고인이 된 어머님을 대신하여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5년간 수행하며 철저한 유신정치 학습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인맥을 그대로 승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가장 충직한 부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흉탄에 시해당하면서 청와대를 나온 후 18년간 은둔생활을 해야 했고 곁에는 다행인 것인지 모르나 최순실이 늘 함께 있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박근혜를 지켜왔던 충직한 인사들이 박근혜를 정계로 다시 불러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효과를 입어 급기야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가 촛불혁명을 만나 탄핵되어 영어의 몸이 되었다.


여기서 잠시 ​3선 개헌과 이만섭 전 의장의 이야기를 더듬어 보자.


역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항명을 '10.2항명사태' 라 기록했고, 박근혜 대통령 재임기간에 일어난 반란을 '5.29배신사태' 이라고 말한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9년 민주공화당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의 길을 열기 위해 3선개헌​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리고 국민투표까지 통과하여,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3선에 성공했다. 웃기는 정치사지만 공화당은 유정회의 출범과 함께 다수당이 되는 양대 선거를 이기고 유신정권을 출범시켰다. 이때 공화당에서 급부상한 것이 양대선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백남억 김성곤 김진만 길재호 등 신주류 4 인방이었다.

 
그런데 1971년 9월 30일, 원내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이 '물가고' '실미도 군 특수범 난동사건' '사법파동' 등의 책임을 물어 김학렬 경제기획원장관, 오치성 내무부장관, 신직수 법무부장관 등 3인의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고 나왔다. 그러자 바로 그 이튿날인 7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은 공화당 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 당내 결속과 의원들의 반란표 단속을 부탁했다. 그러나 공화당 주류계에 극렬 반발하고 있던 김종필계 신주류 4인방이 신민당과 합의하고 오치성 내무부장관 한 사람만의 해임안을 공화당 의원 18표의 이탈로 가결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이 엄청 뿔났다. 이를 항명행위로 규정하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신주류 4인방은 남산의 안가로 끌려 들어갔고, 김성곤 의원의 콧털이 뽑히고, 길재호 의원이 절뚝거리는 치도곤을 당하고 나서, 길재호, 김성곤 두 의원이 탈당계를 제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김창근, 문창탁, 강성원 의원에게는 당명불복종, 오치성 내무부장관에게는 당론분열 조성죄를 물어 6개월간의 당직정지처분을 받았다. 이 사태가 이른바 '10.2항명파동'이다.


지난 역사지만 지금 보니 정치는 조직세계로써 주종관계가 성립되는 상명하복의 세상인 모양이다. 그런데 촛불을 들고 일어선 문 정부는 그런 상명하복 같은 것은 치워버리고 기회균등의 성실한 사람 진솔한 사람이 진실로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열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출범했다. 그래서 인민의 여망(輿望)은 그 어느 정권 때보다 크고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권욕이라는 것은 분수를 넘는 것일까?


소위 국정을 대통령을 대신하여 맡아 국리민복에 기여해야할 장차관들이 대부분 불성실하고 비도덕적인 문제인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뿐이라서 더욱 실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설상가상으로 해바라기들이 떼로 밀려 다니면서 대통령의 현안(賢顔)을 흐리게 하기 일쑤이다. 진실로 애국충정의 말을 대통령께 하는 사람이 어딜 가 있는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금태섭과 박용진(이하 금박)이라는 두 의원이 사실을 말 했을 뿐이다. 그런 충정(忠情)된 말에 또 찬물 끼얹은 사람이 있으니 그는 구차한 설명이 필요치 않은 유시민과 이재정이다. 이 두 사람은 우리들의 기대를 너무도 크게 허물었기에 앞으로 회자(膾炙)할 가치도 없으려니와 한국 정치사에서 영원히 퇴출되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외롭게 그리고 민주당과 대통령을 위하여 인민의 진정한 가슴의 외침을 이야기 한 금박의원이 지금 민주당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 조국 장관의 입각에 문제를 제기하자 이를 옹호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그 추종자들이 공격한 모양이다. 그런가하면 민주당의 열성 지지층은 “조국을 끌어내리려는 세력에 명분을 줬다”며 금 박의원에게 비난의 화살을 그치지 않고 있다. 세상이 아니 문정부가 어찌 되려고 진실을 말하는 자를 외면하고 있으니 과연 촛불 초심은 어디로 간 것일까 묻는 것이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90학번인 박은 ‘86세대의 독점’을 성토했다. “시대의 과제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은 채 자기가 경험했고 만들어온 것만 이야기한다. 86세대가 만들어놓은 부조리, 불합리, 사회적 불평등을 이겨내고 변화시키려는 게 아니라 그것과 함께 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20대가 돌아온다.” 86세대의 반성과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며 박은 자기주장을 굳히지 않고 계속 말하기를
“내가 대변한 목소리는 상식이었다. 첫째,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어떻게 조국이 이럴 수 있냐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둘째, 역지사지하면 답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일사불란한 친박 때문에 박근혜가 망했다. 합리적 비판, 상식적 문제 제기가 당 안에 있어야 한다. 저는 그걸 ‘방파제 효과’라고 본다. 이 방파제가 더 큰 위험을 막아낼 수 있다. 셋째, 그게 민주정당이다. 이견이 존재하고, 표현되고, 토론되는 게 맞다. 더불어민주당을 더 튼튼히 하는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강하게 더 말하기를 “제가 학생운동 할 때 그런 조롱을 들었다. 교수님이나 학생운동 했다는 선배들로부터 “너희가 뭘 아냐”고. 유 이사장의 20대, 제가 데모할 때인 20대, 지금 집회하는 20대가 다 똑같다. 유 이사장은 그때 전두환 정권을 둘러싼 모든 정세를 다 이해했나? 전두환 정권이 보인 비이성적 태도와 폭력성에 저항했던 것 아닌가. 다양한 의견을 인지하지 않고 ‘복면을 쓰고 그러냐’, 그렇게 얘기하면 절대 안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 층을 조롱하는 것이고, 그게 꼰대다. 나 땐 안 그랬는데 너희는 그래?, 이런 식엔 동의할 수 없다. 유 이사장이 이렇게 얘기하는 바람에 대학생들이 등을 돌렸다.”것이다. 이런 정치에 국민이 어떻게 미래에 대한 일을 위임하고 맡길 수 있겠냐.”


‘조국 논란’을 통해 많은 국민이 학력·스펙의 대물림을 봤다고 말한다.


“교육은 거의 유일한 평등의 기제, 기회의 사다리다. 그런데 제 기능을 못 한다. 있는 집 아이들이 좋은 기회 갖고 더 좋은 대학을 가고, 더 좋은 조건에서 출발한다. 교육 사다리를 통해 계층이동을 하는 변화 자체가 불가능해진 대한민국이다.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한 고교 교육 정상화는 진짜 과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6세대가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자식을 통해 부의 대물림을 하는 최일선에 서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들은 전두환 때 졸업정원제로 대학은 어렵지 않게 들어가고, 잠깐 반정부 투쟁을 통해 짜릿한 승리를 맛보고, 엄청난 호황기에 직장도 거의 맘대로 골라 갔고, 중산층에 손쉽게 들어갔다. 이제 자식에게 교육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경쟁적으로 앞장선다. 학교가 엉망이라며 대안학교에 제일 많이 간 이가 86세대의 자식들이다. 제가 배운 진보는 제도를 바꿔 사회 전체가 제도 변화의 혜택을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제도 변화는 내팽개치고 자기 아이들만 대안학교에 보내 따로 관리한다, 이런 발상 자체가 기득권 논리다. 사회적 기회를 만들어주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너무 쉽게 내 아들은 유학 보내고…, 이렇게 해결했다. 386 운동권으로 정치 및 관료 사회에 들어와 사회적 기득권화된 세력이 자기들의 권한과 혜택을 지키기만 했다.


여야 합의로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자.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시행령을 제정하여 세월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나왔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압박을 가해왔다.  정부가 하는 일에 시시콜콜 꼬투리 잡기를 중단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민생법안 조속처리를 요청하고 나온 것이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청와대가 국회를 향해 도전을 해 온 것으로 판단하고, 2015년 5월 29일, 정부에서 임의로 시행령을 만들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견제하기 위한 내용을 주축으로 하는 국회법개정안을 새누리당 소속 의원 95명의 찬성을 얻어, 재적의원 299명 중 211명의 절대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정부로 이송했다.  이번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엄청 뿔났다.

1971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 10.2항명파동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 감히 내 비위를 새누리당 지도부가 앞장서서 건드렸다 이거지 ?


거의 한 달을 버티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드디어 푹발했다. '새누리당 지도부와 야당의 야합' '의회 패권주의' '당리당략' '줄 세우기' '야권과 빅딜' 자기보신주의 팽배' '부정부패의 온상' '차기 선거에서 심판' 등의 폭언과 함께.​" 행정부가 꼭 필요한 법은 당리당략으로 묶어두고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은 빅딜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다..." 라 했다. 그리고 결론으로 '배신의 정치' 를 선언했다.​ 6.25한국전쟁이 일어났던 날인 6월 25일의 박근혜 대통령의 대의회선전포고를 정치평론가들은 "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6.25전쟁을 선포한 날..."이라 했다. 그리고 전쟁선포 13일이 지난​ 7월 7일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총회에서 무기명.비밀투표로 선출했던 유승민 원내총무를 김무성 대표의 제안에 따라 박수 치는 것을 만장일치 가결로 간주, 찍어내기를 채택했다. 5.29반란 41일만의 친위쿠데타 성공을 한 것이다.세상사의 돌고 돌아감이란 이렇듯 뚜렷하게 정의가 있고 눈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잘 이해해 보이는 금박 중의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조국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돌직구’로 주목받았다. 다른 여당 의원들과 달리 “조국 후보자의 가장 큰 단점은 공감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해서다. 조 장관이 서울대 법대 교수로 부임하고 맞은 첫 박사과정생이었던 사실까지 알려져 그는 이날 민주당 ‘X맨(스파이)’ 등으로 불리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까지 오르내렸다. 11일 만난 금 의원은 “조국 장관이 더 많이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법은 없었다’고 한 그의 태도가 잘못됐다며 “젊은이들의 눈을 마주보고 공감했다면 차마 그렇게 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고는 2011년 서울대 교수였던 조 장관에게 정계입문을 요청했던 일도 떠올렸다. “집 앞에 찾아가기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 안 된다고 생각해 ‘참신한 진보 정치인’을 찾다 조 교수 설득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란 의미다. 금의원은 더 강조하기를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한 쪽 진영에 실망하면 다른 쪽으로 갈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갈 데가 없다. 민주당에 실망했다고 한국당으로 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이 ‘청년 이동 불가’를 하나의 전략 요소로 고려한다는 거다. 그렇게 오만한 생각을 하면 한국정치 전체가 무너진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를 반면교사를 삼아 정치인 인선 시스템 개선이 물론 중요하다. 현재 국회에 젊은 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30대 국회의원이 거의 없다. 일단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을 해줘야 한다. 당에서 비판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말 하는 놈이 있긴 있어야 되지 않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심도깊게 말하기를 사법개혁·검찰개혁을 잘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자답하기를 일단은 임명이 됐으니 좀 지켜봐야겠다. 정치권에서도 장관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겠다. 다만 수사 대상이 검찰개혁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건 상식적인 의문이다. 나는 여기에 더해 또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조 장관이 민정수석 시절 주도해 만든 정부의 검찰개혁안 골자는 현재의 검찰 수사권은 그대로 두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라는 더 강력한 권력기관을 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조직과 인력을 늘려 놓으면 자꾸 일을 찾아서 할 수밖에 없다. 수사 관련 조직과 예산을 줄이고 특수부를 없애야만 검찰 개혁이 된다. 당장 없애기 어려우면 서울·부산·광주 세 곳에만 특수부를 남기고 순차적으로 줄이는 방안도 있다며 그 외에도 여러 의견을 했으나 약하기로 한다.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대목은 현 정부의 검찰개혁안이 "권력기관의 속성과 조직원리에 대한 통찰 부족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전국의 우수한 인재를 검찰에 모아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한을 주고 부정부패 척결 역할을 맡겼다"며 "역대 정권들은 보수ㆍ진보를 가리지 않고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 효율성은 그대로 두고, 부작용을 줄이려 했다. 그렇게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앞으로 우리 인민은 다 같이 조국장관의 행동거지를 하나하나 체크해 갈 것이다. 그리고 용감한 의리의 정치인 금박의 정치여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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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16 [13:43]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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